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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신진우]또 흐느낀 김정은, 그 눈물 뒤편의 공포

입력 2022-05-27 03:00업데이트 2022-05-2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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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우 정치부 차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또 눈물을 흘렸다.

현철해 인민군 원수의 빈소에서다. 19일 사망한 현철해의 빈소를 하루 뒤 찾은 김정은은 유해를 바라보며 비통한 표정을 짓더니 손수건까지 꺼내 들고 눈물을 훔쳤다. “상실의 아픔을 금치 못한”(북한 조선중앙통신 표현) 김정은은 현철해의 시신이 든 관을 직접 운구까지 하며 마지막 예를 갖췄다.

군부 핵심 현철해는 김정은의 후계자 수업을 맡아 했다. 빈소를 찾아 흐느낀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자 인간적 도리일 터. 다만 그걸 주민들에게 그대로 노출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북한 매체는 영상의 한 장면, 사진의 미세한 각도까지 검증에 검증을 거듭해 걸러낸다. ‘김정은의 눈물’이 전하려는 의도나 다른 차원의 메시지가 분명 있다는 의미다.

2011년 12월. 아버지인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20대 김정은은 눈물을 보였다. 영결식 날 김정일 운구차를 호위한 이 후계자는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눈 내리는 평양 시내를 침통한 표정으로 돌았고, 그 모습은 그대로 세상에 드러났다. 이후 김정은은 잊을 만하면 눈물을 훔쳤다. 2015년 설날에는 첫 방문지로 평양육아원을 찾아 눈물을 흘렸다. 2020년 당 창건기념일 열병식에선 주민들을 앞에 두고 “미안하다” “고맙다”를 연발하며 울먹거렸다.

이런 김정은의 눈물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애민(愛民)’이다. ‘백성을 굽어 살피시는’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을 때 김정은은 전가의 보도인 눈물을 끌어내 닦았다.

그런데 김정은의 눈물에서 특히 주목할 지점은 따로 있다. 우리 당국자는 “김정은 체제 선전정책의 핵심은 최고지도자의 강온 양면을 동시에 노출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강인한 장군 이미지와 눈물로 상징되는 따뜻한 어버이 이미지를 동시에 연출해 주민들을 현혹시키려 한다는 얘기다. 이는 김정은이 그렇게 닮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내세운 선전선동 전술과도 맞닿아 있다.

실제 김정은은 눈물을 흘릴 때 더 무서웠다. 김정일 영결식 날 그렇게 통곡한 앳된 청년은 얼마 뒤 고모부인 장성택을 잔인하게 처형했다. 2017년 이복형 김정남을 독살했을 땐 중국 매체에서 ‘김정남 피살 소식에 김정은이 소파에 쓰러져 울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철해의 빈소에서 비통해한 김정은은 불과 닷새 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섞어 쐈다. 스스로 “건국 이래 대동란(大動亂)”이라 표현한 코로나 정국 속에서도 도발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북한은 2020년 열병식에서 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신형 무기들을 과시하며 무력시위를 했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는 “사랑하는 남녘 동포” 운운하며 울먹거린 김정은의 눈물에 더 주목했다. “남북관계를 복원하자는 것”이라며 반색했다. 이런 오판에 웃었을 김정은은 눈물의 뒤편에서 차곡차곡 핵·미사일을 다졌다.

김정은이 울먹거릴 땐 섣불리 장단에 맞춰주기보다 그 이면을 봐야 한다. ‘악어의 눈물’에 현혹돼 빗장만 열어주기엔 그동안 너무 당하지 않았는가.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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