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수용]둔촌주공 공사 중단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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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의 오래된 별명은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 ‘서울 분양시장 최대어’였다. 여기에는 조합원 수만 6100명에다 조 단위의 공사비가 드는 미니신도시급 단지에 대한 기대감이 녹아 있었다. 하지만 요즘 ‘재건축 분쟁의 종합 백화점’이라는 유쾌하지 못한 별명이 추가됐다. 2019년 1급 발암물질인 석면 부실 제거, 2020년 분양가 규제에 따른 일반분양 지연 논란에 이어 최근 초유의 공사 중단, 입주 지연 사태까지 벌어진 탓이다.

▷1980년 준공된 둔촌주공은 원래 서민들에게 싼값에 집을 장만할 수 있는 기회로 통했다. 하지만 2006년 정비구역 지정 이후 몇 안 남은 서울 노른자위 재건축이라는 가치가 부각되면서 서민아파트 이미지는 자취를 감췄다. 착공 직전인 2019년 말 둔촌주공 전용 99m² 규모 아파트 값은 18억 원대에 이르렀다. 분양가가 3.3m²당 3500만 원을 넘을 가능성이 적지 않고 대출도 어렵지만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인생 역전을 꿈꾸는 ‘로또 단지’가 됐다.

▷재건축 기대감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힘에 따라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도 덩달아 커졌다. 갈등의 원인은 2020년 6월 과거 조합과 시공사가 체결한 공사비 증액계약이다. 현 조합 측은 이 계약에 절차적 문제가 있어 무효라고 주장하는 반면 시공사업단 측은 적법한 계약이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다 시공사가 15일 공사를 중단한 데 이어 16일에는 재건축 조합이 과거 총회에서 의결한 공사비계약 건을 취소하기로 했다.

▷지금 둔촌주공 재건축은 모두가 ‘지는 게임’으로 전락하고 있다. 조합은 이주비와 사업비를 대기 위해 금융권에서 2조 원에 가까운 돈을 빌렸다. 사업 지연으로 생기는 연간 이자 부담만 800억 원 규모다. 시공사는 시공사대로 지체 보상금이라는 불씨를 안고 있다. 조합원들은 1인당 3억 원 정도인 이주비 대출 이자가 눈덩이처럼 커질 뿐 아니라 임시로 살고 있는 전월세 계약을 얼마나 연장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둔촌주공 공사 중단은 일개 재건축 단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단지의 공급물량 1만2000채는 올 서울 공급예정물량의 4분의 1에 달한다. 입주가 지연되면 매매와 임대차시장에 연쇄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다. 서울시는 둔촌주공에 코디네이터를 보내 중재 역할을 하려 했지만 읍소에 가까운 구두권고로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재건축 규제 완화로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만 불신이 가득한 조합과 시공사에만 맡겨두는 현행 방식으로는 어렵다. 민간을 통한 공급 확대라는 새 정부 주택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서울 둔촌주공 아파트#재건축#공사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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