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전과 휴전 위한 양보 사이…딜레마에 빠진 젤렌스키

  • 뉴시스
  • 입력 2022년 4월 4일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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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매일같이 국방색 차림새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대상으로 연설하는 동영상을 촬영한다. 책상 앞에 앉은 모습이거나 야간에 거리에 나선 모습도 있다. 그런 그가 최근 닥쳐올 어려움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달 31일 화려한 장식의 의회 건물 앞에서 “우리 모두 승리를 원하지만 전쟁이 이어질 것”이라면서 “우리가 원하는 모두를 얻기까지 여전히 힘든 길을 가야한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가가 겪어야 하는 힘든 여정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러시아와 진행하는 휴전 협상이라고 지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수많은 사상자와 경제적 붕괴, 광범위한 시민들의 고통 속에서 사기를 진작시키고 투쟁의지를 고취해야만 한다. 서방국들을 설득해 무기 지원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와중에 러시아와 진행중인 휴전 협상에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어느 선까지 양보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를 파악해야만 한다. 키이우 주변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하면서 새롭게 밝혀진 잔혹행위들 때문에 양보하기가 한층 어려워지기도 했다.

아메리칸 대학교 정치학과 케이스 다든교수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애국심을 자극해 항거하도록 이끌어 왔지만 바로 그 애국심이 전쟁을 끝내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오래도록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확실하지 않다면서 “그 점이 가장 큰 딜레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몇 달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만나 러시아측 요구사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해왔지만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다비드 아라하미아 우크라이나 협상단 대표는 2일 우크라이나가 젤렌스키와 푸틴이 터키에서 만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도 푸틴과 협상하는 건 정치적 부담이 크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민들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양보하는 걸 지지하지 않는다고 느낄 경우 전쟁이 길어질 수 있다. 반면 평화협정이 이례적으로 높은 정치적 지지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해 헌법에 규정된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포기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대신 유럽연합(EU)에 가입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연하고 현실적임을 보여줬다. 지난달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인명을 구하는 것이 승리”라고 강조했었다. “땅도 중요하지만 그건 궁극적을 영토일 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러시아에 “마지막 도시까지 맞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켄난연구소 우크라이나 전문가 미하일 미나코프는 “현재로선 모든 사람들이 저항하길 원하며 싸워서 최대한 러시아를 무너트리려 한다. 젤렌스키는 (블랙 코미디 영화) 캐치-22와 같은 상황에 빠져 있다. 카리스마를 갖고 지금과 같은 역할을 다하려 하지만 동시에 해법도 찾아야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2019년 73%의 지지율로 당선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지도는 지난해 러시아가 국경 지대에 군대를 집결시키면서 30%대로 급락했었다. 러시아의 침공은 푸틴이 젤렌스키를 우습게 봤음을 보여준다. 그가 키이우를 탈출해 국민들의 저항의지를 꺽을 것으로 봤다.

서방 각국 역시 젤렌스키가 경험이 부족한 지도자여서 당시 직면한 안보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저평가했었다. 1월 중순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번스 국장은 미국이 확보한 러시아 침공 의사 정보를 제시했으며 암살팀이 이미 키이우에 들어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젤렌스키는 자신의 가족들이 위험하냐고 반문했고 번스 국장은 젤렌스키 본인의 신변 안전을 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젤렌스키가 회의적으로 반응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동원령이나 소개령을 내리지 않았으며 키이우의 카페와 상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문을 열고 있었다.

1월 내내 미국과 서방국들이 우크라이나에게 국경 방어를 강화하도록 경고했지만 우크라이나 정계는 젤렌스키의 전임자 페트로 포로셴코 반역문제에만 몰두했다.

러시아가 침공하고 키이우를 전격적으로 점령하려 시도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서방의 예상을 뒤집고 강력하게 맞서는 용기를 보이면서 암살팀이 키이우에 들어온다는데도 키이우에 남겠다고 했다.

그가 용기를 보인 뒤에도 서방의 많은 사람들이 그가 곧 러시아군에 피살되거나 키이우를 탈출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예상을 뛰어넘어 잘 막아냈다. 반면 러시아군은 여러 면에서 형편없었다.

종국엔 푸틴과 만나야 하는 젤렌스키로선 전쟁에서 선전은 물론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큰 무기다. 그가 이를 잘 활용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받아 들일 수 있는 항구적 평화를 이뤄낼 수 있을 지를 시험받고 있다.

러시아군이 동부 지역에서 더 많은 영토를 점령하려고 시도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침공 이전 영토를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현 상황에선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비서실장 세르히예 레슈첸코는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말을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폭격 당하며 지내는 마리우폴, 하르키우, 체르니히우의 주민들은 안전한 지역의 주민들만큼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일상생활로 돌아가길 원한다. 동시에 사람들은 침략자로부터 우크라이나를 지키려 하고 영토와 주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처한 딜레마를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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