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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이재명의 카산드라 콤플렉스[오늘과 내일/정연욱]

입력 2022-01-29 03:00업데이트 2022-01-2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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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네거티브 중단 등 쇄신카드 속도전
메시지보다 메신저 신뢰 회복이 더 중요
정연욱 논설위원
가히 폭풍 질주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주도하는 쇄신 드라이브 말이다. 이 후보는 “앞으로 네거티브를 일절 중단하겠다”며 민생, 미래만 얘기하겠다고 했다. 당 대표 송영길은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주류인 86그룹의 용퇴를 제안했다. 그동안 꿈쩍도 않고 감싸던 윤미향, 이상직 등에 대해선 의원직 제명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전이다.

그만큼 이 후보 측이 다급하다는 방증이다. 벌써 3개월 가까이 이 후보 지지율은 40% 천장을 깨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국민의힘 내분을 봉합한 윤석열 후보 지지율은 반등했다. 워낙 유동성이 높은 판세라고 해도 정체 상태의 현 추세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응은 기대에 못 미쳤다. 네거티브 중단을 선언했지만 당 차원에선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한 공세는 “네거티브가 아니라 팩트 체크”라고 일축했다. 16일 김 씨 녹취록의 MBC 방송을 앞두고 ‘본방 사수’하라고 독려했다가 역풍이 불었다. 잠시 잊혀졌던 이 후보의 욕설 녹취 불씨만 되살려 놓았다. 때늦은 네거티브 중단 선언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이유다.

송영길은 한 친문 의원의 86그룹 용퇴론을 불출마 선언의 마중물로 삼았다. 그러나 정작 그 의원은 “핵심은 낡은 기득권 제도의 용퇴”라고 발을 뺐다. 오죽 황당했으면 당내에서 “이런 게 요설(妖說)”이라는 조롱을 받았을까. 당 대표가 총대를 멨으니 응당 이어져야 할 후속 용퇴 선언은 아예 감감무소식이다.

조국의 부인 정경심 비리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선고가 나왔지만 이 후보는 침묵했다. ‘이재명의 민주당’도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권리당원 게시판에 대법원 판결 비판을 쏟아낸 친문 세력을 의식했을 것이다. 조국 사태에 대해 “공정성 기대를 훼손했다”고 사과하던 이 후보의 결기는 찾아볼 수 없다. 다시 ‘조국의 강’에 빠진 느낌이다.

이 후보는 “정말로 변하겠다” “살점도 떼어내고 있다”고 호소한다. 절박감이 묻어날 정도다. 그러나 대중을 설득하는 힘은 메신저의 영향력에서 나온다.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에서 신뢰가 생겨야 대중은 호응한다. 화려한 언사는 부차적인 문제다.

송영길은 “이재명 당선이 정권교체”라고 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연장보다 10∼20%포인트 차로 앞서는 구도를 깨기 위해서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가 여당 후보인데도 압도적인 정권교체 여론에 맞서 승리한 기억을 거론하는 모양인데 차원이 다르다. 박근혜는 이명박 정권이 명운을 걸었던 세종시 수정안을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무산시켰다. 그래서 ‘여당 내 야당’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후보가 문재인 정권의 숱한 무능과 실책을 지적하고 시정하려 했다는 기억은 거의 없다. 이 후보가 대국민 사과를 거듭한다고 해서 ‘이재명=정권교체’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배경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공주였다. 아폴론 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탁월한 예언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앙심을 품은 아폴론은 카산드라의 말에서 ‘설득력’을 빼앗았다. 카산드라는 목마를 성 안에 들여놓을 경우 트로이가 멸망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언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결국 트로이는 멸망했다. 신뢰를 잃은 카산드라 콤플렉스다.

거창한 메시지를 쏟아낸다고 해서 국면이 무조건 바뀌지 않는다. 관건은 진정성이다. 메신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그 메시지는 공허할 뿐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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