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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세계사의 결정적 순간은 바다에서 시작됐다

입력 2022-01-22 03:00업데이트 2022-01-2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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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인류/주경철 지음/976쪽·4만6000원·휴머니스트
그리스 산토리니에서 발견된 기원전 1600년경의 벽화로 당시 에게해 지역에 살았던 미노아인들이 선박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휴머니스트 제공
고대 그리스어로 ‘많은 섬들’을 뜻하는 폴리네시아에는 수천 개의 섬들이 드넓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대륙과 떨어져 있다. 바다는 이들을 고립시키는 장벽이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바다는 오히려 길을 열어 섬들을 이어줬다는 것. 폴리네시아인은 카누로 항해하며 각자의 물건을 나눴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통가에서는 다른 섬에서 온 사람을 ‘카카이 메이 타히(바다에서 온 사람들)’라고 불렀다. 바다를 고향으로 여긴 통가인에게는 이웃 섬에서 온 이방인도 내 고향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바다는 나의 것도 너의 것도 아닌 우리의 터전이었다.

전작 ‘대항해시대’(서울대출판부)에서 15세기 해양 세계사를 다룬 저자는 신간에서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인류사를 바다 관점에서 풀어냈다. 저자는 “근대에 이르러 서구인들은 마치 자신들이 최초로 발견한 듯 바다를 소유로 삼으려고 했지만 바다는 먼 과거부터 많은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거북 한 마리가 바닷속에 버려진 비닐봉투를 입에 물고 있다. 해파리를 먹고 사는 바다거북들은 비닐봉투가 해파리인 줄 알고 먹다가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휴머니스트 제공
예부터 바다는 문명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기원전 3세기 인더스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해상무역을 통해 긴밀히 교류했다. 인더스 문명에서는 규질암으로 0.86g과 13.7g 단위의 추를 만들었는데, 똑같은 추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발견됐다. 같은 도량형을 쓴다는 건 두 문명의 사회경제 체제가 서로 연결됐다는 증거. 아프리카 악기 실로폰이 동남아시아로 흘러가고, 인도네시아 악기 치터가 아프리카로 전해진 것도 바다를 통해서였다.

세계사의 결정적인 순간도 바다에서 비롯됐다. 기원전 8세기 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하지 않았다면 제국으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했다. 15세기 초 정화 함대가 인도양을 항해한 후 중국이 해양에서 손을 뗄 무렵, 유럽 열강들은 바다 건너 대륙으로 뻗어나갔다. 저자는 유럽이 해양 패권을 손에 쥔 15세기가 서구 중심의 근대로 바뀌는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대항해시대 바다는 ‘제국의 것’이 된다. 대영제국은 바다 건너 도착한 아메리카 대륙과 이곳에 살던 원주민마저 자신들의 것이라고 여겼다. 세계가 바닷길로 연결됐지만 오히려 지구는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선으로 나뉘었다. 1870년대 개발된 증기선은 범선으로 나흘이 걸리던 240km의 거리를 32시간으로 단축해 자본주의 세계화의 초석이 됐다.

문명에서 제국으로, 제국에서 자본으로 바다의 주인이 바뀐 역사를 조망하는 저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바다는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치 제 것인 양 바다를 누벼온 인류에게 이제는 바다가 경고를 보내고 있다. 육지의 쓰레기가 바다로 떠밀려와 남한 면적의 15배가 넘는 쓰레기 섬을 이뤘다. 어선들의 남획으로 일부 어종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저자는 해저자원 개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와 같은 약탈적 방식이 아니라 해양 환경과 공존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바다가 강대국 간의 전장이 되는 상태를 피하려면 바다의 역사를 원래대로 복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힌 제목은 ‘바다인류’를 붙여 쓰지 않고, 바다라는 두 글자를 인류보다 위에 뒀다. 바다 위에 인간이 있는 게 아니라 바다라는 거대한 세계 안에 인간이 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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