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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한솥밥[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31〉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2-01-22 03:00업데이트 2022-01-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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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싸준 도시락을 남편은 가끔씩 산에다 놓아준다/산새들이 와서 먹고 너구리가 와서 먹는다는 도시락

애써 싸준 것을 아깝게 왜 버리냐/핀잔을 주다가/내가 차려준 밥상을 손톱만 한 위장 속에 그득 담고/하늘을 나는 새들을 생각한다

내가 몇 시간이고 불리고 익혀서 해준 밥이/날갯죽지 근육이 되고/새끼들 적실 너구리 젖이 된다는 생각이/밥물처럼 번지는 이 밤

은하수 물결이 잔잔히 고이는/어둠 아래/둥그런 등 맞대고/나누는 한솥밥이 다디달다

―문성해(1963∼)





추위라고 해서 다 같은 추위는 아니다. 배가 고프면 더 춥다. 학교도 유튜브도 이 명징한 진실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이건 배가 고파서 더 추웠던 사람이 알려주거나, 배가 고파서 더 추운 사람이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허기진 겨울 저녁, 밥 한 숟갈은 언 몸을 녹여주고 쓸쓸한 위장을 달래준다. 때로, 밥은 밥 이상이다.

나날의 식사는 생존을 위한 행위지만 어떤 밥은 일종의 의미로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잊을 수 없는 밥이 존재한다. 아플 때 누군가 밀어주던 죽 한 그릇. 얼굴이 시꺼먼 나를 데려가서 말없이 국밥을 사주던 사람. 매일 먹을 때는 몰랐는데 못 먹게 되니 생각나는 어머니 밥상 같은 것 말이다.

밥 이상의 밥, 의미가 되어 버린 밥은 이 시에도 등장한다. 시인이 정성스럽게 싼 도시락은 산의 들짐승과 날짐승들에게 헌정되었다. 그것은 이리저리 나뉘어 저 몸의 피가 되고 이 몸의 젖이 되었다. 물리적으로는 영양분을 나눠준 것이 맞지만 우리는 이 시를 그렇게 읽지 않는다. 이것은 마음이 퍼져 나간 것이다. 도시락 싼 이의 마음과 도시락을 털고 온 이의 마음이 여러 생명을 살린다. 정성이 담겨 더 뜨끈한 한솥밥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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