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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흔들리지 않는 초심[이준식의 한시 한 수]〈143〉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1-14 03:00업데이트 2022-01-14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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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같이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옷 뒤집어 입은 채 달려가 열어준다./ 그대 누구신가 묻는데, 선량해 뵈는 농부가 서 있다./ 술병 들고 멀리서 인사 왔다며, 세상과 등지고 사는 나를 나무란다./ 남루한 차림에 오두막에 사시니, 훌륭한 거처는 못되지요./ 세상은 다들 하나로 어울리는 걸 좋아하니, 부디 당신도 그 진흙탕에 한데 잠기시오./ 어르신 말씀 깊이 공감은 하지만, 천성이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걸./ 벼슬살이야 물론 배우면 되지만, 내 뜻을 거스른다면 그 어찌 미혹이 아니랴./ 잠시 이 술이나 함께 즐길 뿐, 내 수레를 벼슬길로 되돌릴 순 없지.


(淸晨聞叩門. 倒裳往自開. 問子爲誰歟, 田父有好懷. 壺漿遠見候, 疑我與時乖. 襤褸茅簷下, 未足爲高棲. 一世皆尙同, 願君汨其泥. 深感父老言, 稟氣寡所諧. 紆轡誠可學, 違己詎非迷. 且共歡此飮, 吾駕不可回.) - ‘음주(飮酒, 제9수)’도잠(陶潛·365-427)

벼슬 대신 은거를 선택한 삶이 오죽 별나 보였으면 이른 새벽 득달같이 찾아왔을까. 이웃 농부는 세상과의 소통을 권유하지만 시인의 ‘은거의 변(辯)’은 거침이 없다. 완곡하지만 완강하다. 여느 삶과는 결이 다른 자신의 일탈을 설득하는 데 이 정도 방어 기제는 필요했을 것이다.

시인이 차용한 건 굴원(屈原) ‘어부사’의 대화 방식과 논리. 초나라 조정에서 축출된 굴원이 초췌한 몰골로 배회하자 어부가 이유를 묻는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세상이 다 혼탁해도 나만은 결백하고, 세상이 다 취해도 나만은 깨어 있어 그 바람에 쫓겨났지요. 어부가 말한다. 성인은 외물(外物)에 구애받지 않고 세상 추이를 따르는 법, 세상이 혼탁하다면 같이 진흙탕을 휘젓고 살면 되지 않느냐고. 혼자 젠체하지 말라는 질타였다. 질타 대신 농부는 온화하게 권유하지만 시인의 다짐은 한결같다. ‘내 뜻을 거스른다면 그 어찌 미혹이 아니랴.’ 초심은 미동도 없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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