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살인 부른 공무원 ‘2만원 알바’… 개인정보 유출 이뿐이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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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이석준이 17일 오전 서울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이석준이 17일 오전 서울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일선 공무원이 유출한 개인정보가 살인사건으로 이어진 것으로 밝혀져 충격이다. 작년 12월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 A 씨의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의 범행이, 수원 권선구청 공무원 B 씨가 돈을 받고 넘긴 주소정보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B 씨는 흥신소 업자에게 A 씨의 주소를 넘겨줬고, 이 정보는 3명의 업자를 거쳐 이석준에게 전달됐다. B 씨가 그 대가로 받은 돈은 고작 2만 원이었다. 이석준은 주소를 받은 다음 날 A 씨의 집을 찾아가 A 씨 어머니와 동생에게 흉기를 휘둘렀고 어머니는 목숨을 잃었다. 공무원 B 씨의 ‘2만 원 알바’가 살인자를 피해자의 집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구청 건설과 소속인 B 씨는 건설기계 면허를 발급하는 건설기계관리정보시스템에 특정인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하면 면허 취득 여부와 무관하게 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 B 씨는 A 씨 등의 주소를 유출한 것은 물론, 교통위반관리시스템을 통해 흥신소 업자들에게 차량번호를 조회해주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약 2년간 1100건의 개인정보를 업자들에게 팔아넘겨 4000만 원을 받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석준이 한 흥신소에 A 씨 주소 확인을 의뢰하자 흥신소 3곳이 연쇄적으로 개입했고,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B 씨에게서 주소를 받아 이석준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조직적으로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암흑의 생태계가 없으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업자들이 B 씨하고만 거래했을 리가 없다. B 씨에게서 사들인 1100건의 정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봐야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개인정보가 공무원들에 의해 범죄자의 손에 넘어갔는지, 이 정보를 이용해 이석준 사건 외에도 얼마나 끔찍한 범죄들이 저질러졌을지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다.

2020년 ‘n번방’ 사건 때에도 주범 조주빈은 주민센터의 사회복무요원에게서 여성들의 개인정보를 넘겨받아 이들을 협박하고 성착취 영상물을 찍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정부는 사회복무요원들의 개인정보 접근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정작 공무원들에 대한 조치는 없었다. 이러니 개인정보가 범죄자들에게 술술 새나가는 것이고, 국민은 불안에 떨어야 하는 것이다. 공무원의 개인정보 조회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지 않으면, 공무원들이 결과적으로 흉악한 범죄자를 도와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른다.
#공무원#2만원 알바#개인정보 유출#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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