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개발한 ‘새청무’ 벼, 농가도 소비자도 ‘매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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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여는 사람들’〈6〉육종 전문가 신서호 연구사
곡창이면서도 대표품종 없던 전남… 13년간 500번 교배, 5개 품종 개발
2018년부터 ‘대표’ 차지한 새청무… 생산량 많고 병해충-강풍 잘 버텨
수확 다음 해까지 좋은 밥맛 유지… 올 경제효과 1000억 원 유발 기대

7일 전남 나주시 산포면 전남도 농업기술원 식량작물연구소 온실에서 벼 신품종 육성 전문가인 신서호 연구사가 신품종 육성을 위한 꽃가루 배양 작업을 한 벼의 재배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신 연구사는 전남의 대표적 벼 품종인 새청무(오른쪽 사진)를 개발했다. 전남도 농업기술원 제공
7일 전남 나주시 산포면 전남도 농업기술원 식량작물연구소 온실에서 벼 신품종 육성 전문가인 신서호 연구사가 신품종 육성을 위한 꽃가루 배양 작업을 한 벼의 재배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신 연구사는 전남의 대표적 벼 품종인 새청무(오른쪽 사진)를 개발했다. 전남도 농업기술원 제공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한국인의 식사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쌀이다.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서 쌀 시장에서도 좋은 밥맛을 내고 수확량을 유지하는 신품종 벼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현재 한국이 보유한 벼 자원 수는 4만2238개. 신명재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정보센터 연구사는 “한국이 보유한 벼 자원은 한국 재래종과 육성종, 야생종을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곡창지대가 많은 전남의 면적은 1만2348km²로 전국의 12.3%를 차지한다. 영산강을 낀 나주평야가 있어 농도(農道)라고 평가받는다. 그간 전남은 대표하는 벼 품종이 없었지만 2018년 신품종 새청무라는 벼가 대표 품종으로 자리매김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새청무를 개발해 농민들에게 풍년을 안겨준 신서호 전남도 농업기술원 식량작물연구소 연구사(54)에게 새청무의 효과와 품종 개발 과정, 새해 소망 등을 들어봤다.

○ 새청무 경제효과는 1000억 원

전남의 벼 재배농가 1만6000곳은 지난해 말 시군 농업기술센터나 각 읍면사무소에 벼 종자를 신청했다. 농민들이 품는 ‘풍년의 꿈’은 이처럼 벼 종자 신청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국립종자원 전남지원이 공급하는 보급 품종을 쓰고 있다.

전남지원은 올해 10개 품종의 벼 종자 4602t을 농가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새청무가 57%(2637t)를 차지하고 신동진 23%(1054t), 백옥찰 6%(276t), 동진찰 3.7%(170t), 조명1호와 일미 2.6%(120t) 등이 뒤를 이었다. 나머지는 새일미, 영호진미, 운광, 새누리가 0.2∼2%를 점유한다.

신 연구사는 새청무와 조명1호를 직접 개발했다. 그가 만든 벼 품종이 전남지원이 농부들에게 공급하는 품종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것. 조용수 전남지원 생산팀장은 “새청무는 전남 농가 절반 이상이 재배하는 사실상 첫 대표 품종이 됐다”며 “전남 22개 시군과 광주시에서 공공비축미로 새청무를 선정할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새청무의 인기 비결은 뭘까. 농민들은 “새청무가 생산량이 많고 질병, 강풍에 강하다”고 입을 모으고 소비자들은 밥맛이 좋아 즐겨 찾는다. 35년째 벼농사를 짓고 조태현 씨(61·영암군 도포면)는 “지난해 가을장마, 큰 일교차 등 기후 변화에 병해충까지 심했는데 새청무가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풍년을 안겨줬다. 품질도 좋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자들은 새청무가 수확 다음 해까지도 밥맛이 변하지 않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특히 도정률이 타 품종보다 3∼4%가량 높은 것에 주목한다. 도정률이란 벼의 껍질을 벗기는 도정(搗精) 작업을 한 뒤 쌀로 남는 비율을 뜻한다. 이 때문에 새청무는 전국의 농부, 소비자, 유통업자들이 모두가 선호하는 품종이다.

전남지역은 전국 벼 재배 면적의 21.3%(15만5435ha), 쌀 생산량은 전국 생산량의 20.3%(79만 t)를 차지하고 있다. 전남 벼의 10ha당 기본생산량이 타 지역에 비해 항상 적었지만 지난해 기본생산량은 508kg으로 격차가 다소 줄었다.

이런 결과는 새청무 재배면적이 44%까지 늘어나면서 생산량이 증가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전남 22개 시군 정부 공공비축미 수매는 특등 36.7%, 1등 60.6%로 2020년(특등 30.1%, 1등 63.1%)과 비교해 1등 비율은 줄었지만 특등 비율은 많이 늘었다.

전남도 농업기술원은 새청무 재배로 특등 비율이 높아져 농가의 소득이 252억 원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 도정률이 높아지면서 얻은 유통 이익이 4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한다. 박홍재 전남도 농업기술원장은 “지난해 새청무가 거둬들인 경제효과는 68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올해에는 새청무가 국내 중상위 쌀 브랜드 20%를 점유해 1000억 원의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 “벼 신품종으로 농민을 편하게”

벼 신품종 육종 전문가인 신 연구사는 전남 고흥군 두원면 출신이다. 고흥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광주 살레시오고교를 졸업했다. 1987년 전남대 농생물학과에 입학한 뒤 해당 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 동안 당시 농촌진흥청 호남농업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신 연구사는 2009년부터 전남도 농업기술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박준영 당시 전남지사는 전남을 대표하는 대표 벼 품종이 없는 것을 알고 지역에 맞는 벼 품종을 만들겠다는 정책을 펼쳤다. 당시 경기도는 ‘맛드림’, 강원도는 ‘오대벼’를 개발하는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벼 품종들을 속속 개발하던 시기다.

전남은 벼 나락이 나온 후 기온이 높아지는 데다 일교차가 작고 일조가 짧아 재배 환경이 다른 지역에 비해 불리하다. 지역 특성에 맞는 벼 신품종 개발이 절실했던 것. 이에 신 연구사는 2009년부터 최근까지 조명, 조명1호, 다향(흑미), 새청무, 강대찬 등 품종이 등록된 벼 5개를 만들었다. 전국적으로 품종이 등록된 벼는 500개 정도다.

새청무는 ‘청무’라는 벼 종자의 꽃이 필 때 꽃가루를 제거한 뒤 ‘새누리’라는 벼 종자의 꽃가루를 묻히는 교배로 탄생한 품종이다. 엄마 격인 청무는 밥맛이 좋지만 병해충에 약하고 수량이 적은 데다 수확 시기도 늦다. 반면 아빠 격인 새누리는 병해충에 강해 재배가 편리하며 수확량이 많지만 보관 기간은 짧다. 새청무는 엄마와 아빠의 장점을 각각 물려받아 전남 기후 환경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 연구사는 13년 동안 농업기술원에 근무하면서 새 벼 품종을 만들기 위해 500번가량 품종 교배를 했다. 신품종 1개를 개발하는 데 10∼15년이라는 시간과 열정이 필요하다.

“어릴 적 시골집 농사일을 도우면서 일이 빨리 끝나기를 늘 원했다. 농민들이 편하게 일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농촌에 힘이 되는 벼 신품종 개발을 위해 항상 노력하겠다.”

농부들에게 새청무라는 좋은 벼를 선물한 신 연구사는 새해 꿈을 이렇게 밝혔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새청무#농가#소비자#신서호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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