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갓난아기가 부모 빚 떠안았는데… 국회는 뭐하는지”[이진구 기자의 對話]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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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원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

정경원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돈을 빌려줄 때 채무자의 어린아이가 커서 갚을 것까지 염두에 두는 경우는 없지 않느냐”며 “이제 우리도 미성년 상속인을 성년의 출발점에 채무자로 서게 만드는 상속법은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정경원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돈을 빌려줄 때 채무자의 어린아이가 커서 갚을 것까지 염두에 두는 경우는 없지 않느냐”며 “이제 우리도 미성년 상속인을 성년의 출발점에 채무자로 서게 만드는 상속법은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지난해 5월 본보를 통해 부모 빚을 대물림 받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빚 상속은 영·유아를 가리지 않았고, 성인이 돼 월급 통장이 압류된 후에야 빚의 존재를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상속과 관련된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들끓자 국회에서는 한 달여 만에 몇 건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그뿐. 각 당이 대선 경선에 들어가면서 해를 넘긴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지난해 1억 원이 넘는 빚을 대물림 받은 유철이(가명·당시 18세)의 개인파산을 신청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정경원 변호사(38)는 “엊그제도 8개월 된 갓난아기가 엄마 빚을 떠안은 건이 들어왔다”며 “대법원도 법을 고치라고 했는데 국회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8개월 된 아기가 어떻게 빚을 떠안게 된 건가.

“엄마가 지난해 12월에 사망해서….” (아빠는….) “작년 4월에 태어났는데, 서류상 아버지가 없는 걸 보면 미혼모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갓난아기가 상속인이 된 거지. 자녀가 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법상 그 아이가 모든 재산과 채무를 승계하는 1순위자다. 8개월여 만에 엄마를 잃고 상속인이 된 건데, 지자체에서 상황을 파악하다가 빚이 있어 보여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지금 파악 중이다.” (엄마는 나이가….) “스물일곱….”

―도와줄 방법이 있나.

“물려받은 재산 안에서만 빚을 갚는 상속 한정승인을 신청할 생각이다. 재산과 빚을 모두 포기하는 상속포기도 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모르는 재산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것보다는 한정승인으로 해주는 게 낫다. 그래도 이렇게 알게 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어떻게든 도와줄 수 있으니까. 파악이 안 돼서 그렇지 성인이 돼 갚을 때까지 족쇄를 차고 살아야 할 아이들도 많을 거다.”

※미성년자가 빚을 대물림 받지 않으려면 상속포기, 한정승인,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해야 한다. 특별한정승인은 한정승인 신청 기간(3개월)이 지난 뒤 빚을 알게 됐을 때 이용할 수 있다.

―구제 제도는 있지만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미성년자는 직접 법률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정대리인이 신청해야 한다. 친권자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는 경우도 있고, 있어도 오래전에 헤어져서 이제는 나 몰라라 하는 부모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누군가가 친권 정지 재판을 해서 이기지 못하면 법정대리인도 세울 수 없다. 친권 정지 재판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상속포기, 한정승인 신청기간이 3개월로 너무 짧은 것도 문제다. 남편이나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마음을 추스르기도 부족한 시간인데 그 안에 재산 정리를 다 해보고 신청하라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하는 거다.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지난한 법 절차까지 밟게 하는 건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상속 한정승인을 잘 활용한 사람 중 하나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조 전 장관의 부친은 웅동학원을 설립하며 진 빚을 다 갚지 못하고 2013년 사망했는데 남긴 재산은 21원이었다. 법원은 조 전 장관의 모친 18억 원, 조 전 장관 형제는 각각 12억 원을 채권자인 캠코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조 전 장관 일가는 물려받은 재산 안에서만 빚을 갚는 한정승인을 신청했기 때문에 갚지 않아도 됐다. 그는 2014년 6월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란 책을 출간했다.

―채권자들이 신생아에게까지 빚 독촉장을 보낸다던데, 갚지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 왜 보내는 건가.

“그게 내막이… 금융권에서 채권을 대량으로 사온 회사들이 무조건 기계적으로 뿌리기 때문이다.” (채권을 산 회사들?)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채권을 금융권에서 아주 싼값에 대량으로 사들이는 회사나 개인들이 있다. 채권의 5∼10%, 심지어 1∼2% 가격으로도 산다. 금융권에서는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까 얼마라도 손실을 보전하려고 그렇게 판다. 대량으로 사와서 일괄적으로 뿌리기 때문에 대상이 어른인지 청소년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안 한다.”

―그런 채권을 사면 이득이 있나.

“전액은 아니지만 다만 얼마라도 갚겠다는 사람이 나온다. 1000만 원짜리 채권을 20만∼30만 원에 사왔는데 채무자가 100만 원이라도 갚으면 엄청나게 남는 장사 아닌가. 이런 일을 하는 회사와 개인들이 엄청 많다. 일괄 독촉장을 보낸 뒤 반응이 없으면 소송을 건다.”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그런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단 채권 시효를 늘리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상행위로 인한 채권은 소멸시효가 5년이다. 그런데 소송을 하면 확정된 날부터 10년이 더 늘어난다.”

―유철이는 불이익이 큰 개인파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던데.

“기초생활수급자인 유철이 어머니는 남편이 사망하고 5개월 후에 찾아왔다.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신청기간은 지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특별한정승인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문제?) “아버지가 생전에 빚 소송을 당했는데 그때 어머니도 공동 피고였던 사실을 모른 거다. 그래서 특별한정승인도 신청할 수 없었다.” (남편이 다 처리했다면 살림만 하는 아내는 모를 수도 있지 않나.) “실제로 몰랐던 것 같기는 한데, 입증할 방법은 없으니….”

―담당 판사조차 개인파산 말고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던데.

“유철이 경우에는 설사 특별한정승인을 받더라도 채권자가 다시 소송을 걸 게 분명했다. 어머니가 과거에 공동 피고였는데 어떻게 특별한정승인이 나올 수 있냐며 효력을 없애 버릴 수가 있다. 문제는 채권자가 언제 소송을 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유철이가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면책을 받는 데 1년 정도 걸렸다. 그러고 나면 5년간 신용정보원에 신용불량자로 등재된다. 신용거래가 아예 안 되는 거지. 작년에 유철이가 고3이었다. 만약 채권자가 몇 년 후에 소송을 걸고, 그 결과가 나온 후에 파산·면책을 받으면 빨라도 20대 중후반까지 신용불량자가 된다. 신용불량자는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없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할 때 그런 일이 벌어지기보다는 차라리 대학생 때 겪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휴대전화도 개통을 못 하나.

“파산·면책을 받으면 신용등급이 최하위로 떨어지고 신용카드, 대출 등 모든 신용 거래가 제한된다. 휴대전화는 보통 단말기를 할부로 사니까 못하는 거지. 물론 일시불로 다 주고 사면 개통할 수 있지만 파산 신청을 하는 사람이 그럴 돈이 어디 있나.”

―프랑스는 빚의 대물림이 발생하지 않는다던데.

“프랑스는 미성년 상속인의 법정대리인은 한정승인만 가능하고, 상속 재산이 빚보다 많은 게 명백한 경우에만 법원의 허가를 얻어 단순승인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니 대를 물려 빚이 이어질 수가 없다. 프랑스였다면 유철이는 상속 즉시 한정승인이 되기 때문에 파산 신청을 할 필요도 없고, 당연히 신용불량자가 될 일도 없었을 거다.”

―앞서 말했지만 3개월인 신청 기간은 너무 짧은 것 같다.

“독일은 빚이 있는 걸 모르고 재산을 상속했다면 이를 취소할 수 있는 기간이 30년이나 된다. 또 미성년자가 빚을 물려받아도 성인이 된 시점에 가진 재산만큼만 갚도록 하고 있다.” (우리도 10년 정도로 늘려주면 안 되나.) “안 될 건 없다고 본다. 단지 채권자 입장에서는 빨리 결정이 나야 포기든, 법적 조치든 할 텐데 그게 10년 정도 어정쩡한 상태로 있으면 좀 곤란하기는 할 거다. 돈을 받아야 할 사람의 권리도 있으니까.”

―그럼 독일은 왜 30년이나 주는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쪽에 더 방점을 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거지. 달리 선진국일까. 우리도 프랑스, 독일처럼 가야 하지 않나 싶다. 미성년자는 빚이 생기는 과정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빚이 생기는데도, 구제 신청을 기간 내에 못 한 것도 본인 탓이 아니다. 책임의 원칙에도 반하는데 법적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건 너무너무 억울하지 않나. 흙수저 무(無)수저 이런 말을 하는데…, 이 아이들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족쇄를 차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어른들이 방치하면 어떻게 하나.”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정경원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빚 대물림#8개월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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