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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김선미]작은 책방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입력 2021-12-24 03:00업데이트 2021-12-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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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들려주면 책을 찾아주는 책방
다양한 목소리 담는 책방이 사랑받길
김선미 논설위원
이제는 고인이 된 아버지는 크리스마스에 내게 책을 선물했다. 책 안쪽에는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아빠가.’ 그런데 어릴 때 받았던 책 한 권이 요즘 보이지 않는다. 집 안의 책을 대거 처분할 때 버려진 것 같다. 1984년 나왔던 찰스 M 슐츠의 ‘사랑이란 손을 잡고 걷는 것’ 초판이다.

오래된 책을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헌책방 기담 수집가’란 제목의 신간을 인상 깊게 읽어서다. 14년째 헌책방을 운영하는 저자는 헌책을 찾아주는 비용을 받지 않는 대신 의뢰인들에게 책을 찾는 사연을 들려 달라고 한다. 그중 일부를 묶은 게 이 책이다. 저마다 인생극장 같은 이야기들을 읽다가 나도 그 책방에 가고 싶어졌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빛이 부드러운 다락방 같았다. 주인이자 저자인 윤성근 씨가 푸얼(普이)차를 건네며 물었다. “어떤 책을 찾나요.” 책 표지가 빨간색이었다고, 살아보니 사랑은 책의 구절들처럼 매 순간에 있더라고 답했다. 아버지 생일인 크리스마스에 맞춰 책을 찾을 수 있다면 크리스마스의 선물이 될 것 같다고도 했다. 그가 말했다. “책을 찾는 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못 찾아도 괜찮다. 친절한 탐정 같은 주인의 질문을 따라 추억 속의 아버지를 이미 만났다.

작은 책방에서는 이런저런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책방이 작으면 방문객의 숨소리도 감정도 전해진다. 그래서 떠오른 곳이 서울 종로구 혜화동 동양서림 2층에 있는 ‘위트앤시니컬’이다. 유희경 시인이 5년째 운영하는 12평짜리 시집 전문 책방이다.

이 책방 자체도 사연이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동양서림(1953년 개업)과 이곳을 연결시켜 준 이는 황인숙 시인이다. “고민 많은 두 주인이 칼국수 함께 먹으면서 돌파구를 찾아보라”고. 온라인 공세로 위기를 맞던 환갑 넘은 책방과 신촌에서 이전해야 했던 젊은 책방은 그날의 만남 이후 1, 2층 이웃이 되어 서로를 보완하는 사이가 됐다.

유 시인이 말했다. “한 여성분이 찾아와 시집을 추천해달라고 했어요. 병원에서 코로나19 관련 일을 하는데 마음이 힘들다면서요. 김소연 시인의 시집 ‘i에게’를 골라줬더니 읽다가 울더라고요.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시인의 시가 위로가 됐나 봐요.” 그 말을 듣고 나도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책을 참 좋아하는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다고. 그는 루쉰의 시집 ‘죽은 불’을 건넸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책방은 서울 용산구 후암동, 흔히 해방촌으로 불리는 동네에 있는 ‘스토리지북앤필름’이다. 올 한 해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러 자주 찾던 남산 부근이다. 그곳에서는 대형서점에서는 볼 수 없던 책이 잘 팔린다. 1985∼1988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쓴 연애편지를 2년 전 딸이 묶어 펴낸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라는 제목의 책이다. ‘달빛 아래 가만히’라는 손바닥만 한 단상집도 좋았다. 은행원을 하다가 책방 주인이 된 강영규 씨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책들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작은 책방들에는 작은 사연들이 큰 울림을 내고 있었다. 다시 위트앤시니컬에 가면 시집을 사서 바로 옆 81년 된 중식당 금문에서 군만두를 먹으며 읽고 싶다.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는 틀어놓은 음악의 곡명이 무엇인지 꼭 물어야겠다.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찾아가면 주인이 말없이 차와 귤을 내밀 것 같은 곳들에서, 다정하게 인사하련다. 메리 크리스마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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