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광영]욕실에 갇힌 노인 살린 부재중 전화 50통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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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차장
신광영 사회부 차장
그날 아침 노인의 집에선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현관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었다. 경찰관은 강제로라도 문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홀로 사는 77세 남성이 보름 넘게 연락이 안 된다는 신고가 들어왔을 때부터 예상된 상황이었다.

경찰관 2명과 소방대원 4명이 집으로 들어섰을 때 내부는 찜질방처럼 후끈했다. 보일러가 켜진 상태로 오랜 기간이 흐른 듯했다. 경찰관과 대원들은 방 3칸, 거실, 베란다로 각기 흩어졌다.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크게 불러도 답이 없었다. 그때 안방을 수색하던 대원이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안방에 딸린 화장실의 문이 잠겨 있었다. 문손잡이는 뜯겨져 없었고, 잠금 장치만 걸려 있었다. 이번에도 강제 개방을 했다. 욕실 문을 살며시 열자 타일 바닥 위로 두 다리가 보였다. 대원들은 호흡을 가다듬고 내부로 들어섰다.

노인은 머리를 벽에 기댄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팔을 힘겹게 움직여 보였다. 문이 두 차례나 뜯기는 소리가 나는데도 기력이 없어 소리를 내지 못한 듯했다. 대원들은 서둘러 노인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노인은 한 평 남짓한 욕실에서 불이 계속 켜진 채로 보름가량 갇혀 있었다. 밤낮 구분이 안 돼 시간의 흐름도 느끼기 어려웠다.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문이 잠겨버린 것이었다. 경찰은 “노인이 욕실 문을 열고 나오려 안간힘을 쓰다가 문고리가 빠진 것 같다”고 했다. 수돗물을 마시며 갈증을 견디고, 보일러가 켜져 있어 저체온증을 피할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경찰은 보호자 연락을 위해 노인의 휴대전화를 찾았다. 전화기는 침대 옆 충전기에 꽂혀있었다. 보름 동안 부재중 전화가 50여 통 와 있었다. 노인은 전화벨이 계속 울리는데도 욕실에 갇혀 받지 못하고, 구조 요청도 못 해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에겐 보름간 50통이 넘는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를 살린 것은 바로 그 부재중 전화들이었다. 그의 사회적 관계망에 위험 상황이 포착된 것이다. 노인의 두 친구는 그와 연락이 닿지 않자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확인을 청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들은 “보름 전쯤 우리 집에서 같이 김장을 담그고 수육도 해먹고 헤어졌는데 그 뒤로 이 친구가 연락이 안 돼요. 꼭 좀 찾아주세요”라고 신고했다.

노인은 구조 당일인 7일 오후 아들의 보호를 받으며 퇴원했다. 노인의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무뚝뚝한 편이라 평소 살갑게 지낸 것은 아니지만 간간이 살피고 연락해 왔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접촉이 뜸해지고 몇 주 바쁘게 지내는 사이 아버지에게 아찔한 일이 벌어진 듯했다.

요즘은 홀몸노인의 집에 활동량감지기, 응급호출기 등을 설치해 고독사를 줄이는 ‘복지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통신사들은 ‘AI 안부전화’ 서비스를 출시하고 일부 지자체는 관내 어르신들에게 ‘돌봄 전화’를 돌린다. 첨단 기술과 찾아가는 행정도 필요하지만, 일단 나부터 부모님께 더 자주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욕실#노인#부재중 전화#50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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