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이재명 ‘승어문’ 만으로는 부족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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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연일 文 정부와 차별화 시도
‘나 홀로 경제상식’부터 고쳐야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요즘 문재인 대통령과 선 긋기에 바쁘다. ‘이재명의 민주당’ 선언과 “저는 윤석열도 아니고 문재인도 아니다. 이재명은 이재명이다”라는 발언에서 예고된 변신이다. 부동산, 탈원전 정책부터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 지원, ‘K방역’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버지보다 나은 자식이 되는 걸 승어부(勝於父)라 하는데 문 대통령의 정책 실패를 밟고 일어서야 대권가도가 열리는 이 후보에게 승어문(勝於文)은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선거 코앞에서 바뀌는 게 문제지만 심하게 왜곡된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를 바로잡는 건 옳은 일이다. 현 정부가 백지화한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를 내비친 건 탈원전의 폐해를 고려할 때 다행스럽다. “전 세계에서 방역 잘했다고 칭찬받는데 방역 그거 누가 했나”란 비판도 K방역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절대 놓지 않는 문 대통령의 귀에는 거슬리겠으나 틀린 말이 아니다.

몇몇 정책에 대한 이 후보의 급변침과 달리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경제를 보는 그만의 남다르고 위험한 시각이다. 자영업자에 대한 소극적 지원을 비판하면서 “평범한 나라들은 국가채무비율이 평균적으로 110%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45%에 불과하다. 100% 넘는다고 특별히 문제가 생기나”라고 한 데서 이런 점이 드러난다.

그가 ‘평범하다’고 한 곳들은 모두 미국, 유럽, 일본 등 기축통화국이거나 재정건전성 악화로 경제위기를 겪은 나라들이다. 달러, 유로, 엔화를 찍는 나라와 한국 같은 비기축통화국 부채비율은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기축통화국은 국가채무 100%를 넘겨도 국채를 사줄 나라가 있지만 비기축통화국은 빚이 급증해 부도위험이 커지면 국채가 안 팔리거나 훨씬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비기축통화국의 평균 부채비율이 50.5%이고 60%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보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현 정부 5년간 36%에서 50%로 급등한 한국의 부채비율은 차기정부 말기인 2026년 66.7%로 높아진다.

경제학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이 후보의 주장은 ‘독자적 통화를 가진 나라의 정부는 무한정 돈을 찍어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현대화폐이론(MMT)’을 빼닮았다. 이 후보 주변엔 MMT와 흡사한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있다. 미국 민주당 소수 급진파 의원들이 주장하지만 정통 경제학계는 이단 취급하는 이론이다. 섣불리 실행하면 국가부도를 맞기 십상이다.

“가난한 사람은 이자를 많이 낸다, 그러나 부자는 원하는 만큼 저리로, 장기로 빌려준다. 정의롭지 않다”는 발언도 그의 경제상식이 일반 국민과 많이 다르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문 대통령이 3월에 “신용이 높으면 낮은 이율, 신용이 낮으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가 “대통령이 신용 시스템의 기본조차 이해 못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대변인 실수로 묻고 적당히 넘어간 일이 없었으면 이 후보의 말이 훨씬 그럴듯하게 들릴 뻔했다.

‘소득주도 성장’이 마차가 말을 끄는 것만큼 황당한 주장이란 걸 국민 모두가 깨닫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다행히 국가경제를 모르모트 삼아 실험을 감행한 문 정부에서 독한 백신을 맞은 덕에 우리 사회는 포장만 그럴듯하고 작동하지 않거나 부작용이 더 심한 경제정책에 면역력이 생겼다. 이 후보가 일부 정책에서 ‘문 정부 넘어서기’에 성공하더라도 국민의 높은 경제 이해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 주장만 계속한다면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심긴 어려울 것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이재명#승어문#차별화#더불어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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