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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공짜 점심’의 뒷감당은 누가 하나[특파원칼럼/유재동]

입력 2021-11-30 03:00업데이트 2021-11-3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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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재정지출로 인플레 유발한 바이든
현금살포 공약 쏟아지는 한국에도 시사점
유재동 뉴욕 특파원
얼마 전 10대 자녀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히려고 뉴욕시가 운영하는 접종센터를 찾았다. 창고형 건물을 개조한 그곳에 들어서자 문 앞에서부터 안내 직원이 나와 접종 예약 여부를 물었다. 그 뒤로 등록, 문진, 주사, 이상 반응 관찰, 백신증명서 발급 등 단계별로 담당자가 차례로 붙어 아이의 접종을 도왔다. 굳이 이곳에 이렇게 많은 직원들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접종은 무료였고 100달러(약 12만 원)어치의 선불카드도 인센티브로 챙길 수 있었다.

접종센터의 이 많은 인건비와 운영비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올해 초 조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 직후 추진한 1조9000억 달러(약 2270조 원) 규모의 재정 지출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555조 원)의 4배에 달하는 이 막대한 돈으로 미국 정부는 국민과 실업자들에게 각종 수당을 현금으로 나눠 주고 지방정부에 백신 보급 예산 등을 지원했다.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재정 곳간을 활짝 열고, 중앙은행도 양적 완화로 돈을 풀어 총수요를 진작시키겠다는 의도였다.

‘미국 구조 계획’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재정 지출은 요즘은 도리어 미국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너무 많은 돈을 일시에 풀어 최근 미국 경제를 짓누르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재정당국의 ‘달러 살포’로 수요가 급증하면서 물가가 올랐고, 여윳돈이 생긴 사람들은 지갑이 두꺼워지자 일을 안 하게 됐다. 이는 또 기업들의 생산 차질을 일으켜 물가를 더욱 뛰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요즘 미국 경제 기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인플레와 구인난, 공급대란이 실은 모두 ‘한 묶음’이라는 뜻이다.

과도한 경기 부양은 두 가지 측면에서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 우선 각종 생활물가가 오르면서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겼다. 반면 부자들은 부동산, 주식 등 투자 시장에 돈이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자산이 크게 불어났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며 정권 위기가 찾아온 데는 이런 경제난에 따른 민심 이반에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부의 낙수(落水) 효과를 부정하면서 “밑바닥에서의 성장”을 강조해 온 바이든 행정부가 오히려 생필품 가격 인상을 초래하며 저소득층의 삶에 타격을 준 셈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사태가 경제 재가동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의 견해는 다르다. 현 정부의 천문학적 재정 지출이 경기 과열을 일으킨다고 경고해 온 그는 최근 언론에 “인플레의 고착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다른 보통의 국가들이 이 정도로 돈을 풀었다면 화폐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되고 투자자들이 해외로 탈출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아직 그런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달러화가 전 세계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통용되는 기축통화인 덕분이다. 사실 평범한 미국인들은 재정 적자나 국가부채 같은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여야 합의 지연으로 요즘 사상 초유의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리고 있는데도 나라가 진짜 망할 거라 걱정하는 사람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대선을 앞두고 현금을 뿌리는 공약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기축통화도, 넉넉한 해외자산도 없는 우리는 그 뒷감당이 가능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경제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는 엄중한 현실을 ‘달러 제국’ 미국에서도 깨닫고 있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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