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 칭호에 ‘주석’ 직함… 김일성급 셀프 등극한 김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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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김정은 집권 10년… 우상화 작업 본격화
金, 빠르게 당-정-군 장악
김일성-김정일 벗어나 ‘김정은 시대’

다음 달 17일이면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10년이 된다. 27세의 젊은 후계자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집권 10년을 맞는다.

2011년 12월 김 위원장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김정일의 운구차를 뒤따르던 모습이 공개되자 일각에선 경험이 부족한 20대 지도자가 정권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퍼졌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빠르게 당·정·군을 장악해 나갔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최근 북한에서 ‘김정은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집권 10년 만에 자신을 우상화하는 독자적인 사상과 이념체계를 확립해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김정은 시대’를 선언한 것이다.

○ 집권 10년 만에 ‘수령’ 칭호

김 위원장의 지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호칭이다. 북한 관영매체는 최근 김 위원장을 ‘수령’으로 지칭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11일 ‘위대한 수령을 높이 모신 인민의 강용한 기상을 만천하에 떨치자’ 기사에서 김 위원장을 ‘인민적 수령’ ‘혁명의 수령’으로 불렀다. 이날 논설에서는 “김정은 동지는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열화 같은 사랑을 지니시고 희생적 헌신으로 사회주의 위업을 빛나는 승리로 이끄시는 위대한 수령”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전날 논설을 통해서도 “김정은 동지를 수령으로 높이 모신 것은 우리 인민이 받아 안은 최상 최대의 특전이며 대행운”이라며 치켜세웠다.

북한에서 ‘영원한 수령’은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 ‘영원한 총비서’는 김정일을 가리키는 고유 호칭이다. 김 위원장은 1월 노동당 제8차 당 대회 때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됐다. 김정일 자리라며 비워놓았던 총비서 자리에 오른 데 이어 이제는 김일성과 같은 반열에 올랐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확고한 정치적 위상을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올해 1월부터 김 위원장의 대외 직함 영문 표기도 ‘체어맨(chairman·위원장)’ 대신 김일성 때처럼 ‘프레지던트(president·주석)’로 바꿨다.


2013년 고모부이자 당시 권력 실세였던 장성택을 숙청하는 등 권력 장악을 본격화한 김 위원장은 5년 전인 2016년 36년 만에 노동당 대회(7차)를 열고 헌법을 개정해 국방위원회를 폐지했다. 이어 국무위원회를 신설한 뒤 국무위원장에 올랐다. 김정일 시대의 구호였던 ‘선군(先軍)정치’의 그늘을 지워 가며 당 중심의 권력 장악을 본격화한 것. 평양 주요 건물에서도 ‘선군정치’ 간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이 권력 안정화를 위해 당·정·군 주요 간부에 대한 숙청을 이어가자 두려움을 느낀 권력 엘리트들이 잇따라 탈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김 위원장이 통치에 더욱 자신감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 이후부터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은 대북 제재를 풀고 경제난을 탈피하려는 목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협상을 시도한다. 이 시기 김 위원장의 대형 초상화가 평양공항에 걸리는 등 김 위원장 1인 우상화가 본격화됐다.

○ ‘김정은주의’로 선대 흔적 지우기

국정원은 “북한에서 김 위원장 집권 10년을 맞아 ‘김정은주의’를 북한의 새로운 독자 사상체계로 정립하는 시도가 있다”고 보고했다.

김정은주의의 탄생은 김 위원장이 선대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은 김정일 사망 이후 100일간의 추모 기간이 끝나자 2012년 4월 4차 당 대표자회를 열고 “노동당의 지도사상은 김일성-김정일주의”라고 강조하며 선대의 후광에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5년 김 위원장의 신년사부터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표현이 줄어들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1월 변경한 새 노동당 규약에서는 이례적으로 김일성과 김정일 이름을 주어로 한 문장이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무력 완성과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자신의 성과만으로도 통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정원은 또 “김 위원장이 일부 당 회의장에서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없앤 것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선대의 사상체계와 그늘에서 독립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김정은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우리 국가 제일주의’와 ‘인민 대중 제일주의’가 핵심 토대를 이룰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국가 제일주의는 군과 강한 국방력을 중시하던 선군정치에서 벗어나 나라의 전반적 국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민 대중 제일주의는 북한 주민들의 이익과 편의를 최우선시하며 실질적 생활 수준을 향상한다는 사상이다.



○ 경제난 속 주민 앞에서 눈물도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인민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국방발전전람회 영상에서 애국가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김 위원장 얼굴이 그려진 흰색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포착됐다. ‘최고 존엄’ 얼굴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도록 강요해온 북한 사회에서 파격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 위원장이 당 간부들과 맥주를 마시거나 맞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공개한 것도 김 위원장이 은둔형이었던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인민에게 친숙하다는 이미지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노동당 창건 75주년 심야 열병식에서는 주민들과 군 장병들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면목 없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전재우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 사회가 더 이상 과거의 비현실적 신비화 방식을 고수해서는 효과가 나지 않고 북한 주민들의 인식 수준에 맞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연출해야 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주의가 등장하며 북한이 우상화에 속도를 내는 데는 극심한 경제난을 고려한 측면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 수해까지 삼중고를 겪으며 경제난이 심해지자 주민들의 불만 확산과 동요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것.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CNA) 적성국분석국장은 미국의소리(VOA)에 “북한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우상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인위적으로 강화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방법을 쓸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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