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희창]고무줄 가상화폐 과세,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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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창 경제부 기자
박희창 경제부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국회에서 “예정대로 가상화폐에 과세하겠다”고 거듭 말했다. 정치권이 또 들고나온 과세 유예에 선을 그은 것이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로 연간 250만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투자자는 번 돈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홍 부총리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유예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올해 10월부터 가상화폐 과세를 시작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과세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업계 의견과 정치권의 맞장구로 3개월 유예를 해줬다. 대선을 앞두고 추가 유예를 요구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8일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가상화폐 과세 1년 유예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민주당도 과세 1년 유예를 당론으로 정했다. 이 후보는 “2023년 주식 양도 차익 과세를 시작하는데 시행 시기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역시 9월 경선 토론회에서 “현재 상태에서의 과세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코인 사기 등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고 관련 제도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정치권의 파상 공세에 홍 부총리는 “이런 상황 때문에 지난해 여야 의원들이 과세하기로 다 합의해서 이미…”라며 말을 끝마치지도 못했다.

여야 대선 주자가 드물게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가상화폐 주요 투자자들이 2030세대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올 들어 9월까지 4대 거래소에서 한 번이라도 코인을 사고판 투자자는 570만 명이 넘는다. 2019년 51만 명보다 10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국내 최대 거래소 업비트에선 전체 투자자의 60%가 2030세대다. 젊은층에서 인기가 없는 두 후보로서는 코인 투자자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권은 이번에도 “과세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를 댄다. 당장 52일 뒤면 과세가 시작되는데 수익 산정 계산법 등 불명확한 지점이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세 시작은 내년 1월이지만 세금을 매기는 대상은 내년 가상화폐로 번 돈이다. 투자자들은 2023년 5월 첫 신고를 하면 된다. 정부 당국자들이 “과세는 문제없이 준비할 수 있다”며 맞서는 이유다.

가상화폐 과세는 1년 전 국회가 통과시켰다. 1년 전 예고된 제도조차 실행하지 못하는 행정력이라면 한 번 더 연기한다고 한들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있겠나. 준비가 덜 됐다면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해 과세를 연기하는 게 옳지만 제도를 만들고 감시를 소홀히 한 의원들과 실행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관료들의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일관성과 법의 신뢰성이 훼손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고무줄 가상화폐 과세 논란은 한국 세법에 또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


#가상화폐 과세#책임#홍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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