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1차원 세계서 살고 싶은 10대들”

이호재 기자 입력 2021-10-15 03:00수정 2021-10-1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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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퀴어 사랑 그린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 낸 박상영
30대 중반의 남성 작가 ‘나’는 어느 날 ‘1004’ 아이디의 누군가로부터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받는다. “오랜만이야”로 시작하는 메시지에는 지방 D시의 호수에서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담겼다. 나는 ‘그 시절’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살았지만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걸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나는 10년 넘게 접속하지 않은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열고 거기 쓰인 옛 일기를 읽는다. 오랫동안 봉인해놓은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는 서서히 과거로 돌아간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D시에서의 불안한 10대로….

8일 자신의 첫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문학동네)를 펴낸 박상영 작가(33·사진)는 13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신작은 10대들이 서로 사랑하고 상처 주는 일을 반복하며 성장하고 방황하는 이야기”라며 “약하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공격하는 10대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 단편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문학동네), 2019년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에서 주로 성인들의 연애를 그렸다. 신작에선 남들과 다른 성 정체성을 자각한 10대 퀴어들의 사랑을 다뤘다. “누구든 공감할 수 있도록 보편적 10대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어요. 어떤 세대가 읽든 심리적 허들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죠. 물론 신작을 퀴어 소설로 해석하건, 성장 혹은 연애소설로 읽건 그건 독자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2000년대 청소년들이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풍경을 세밀히 그려내며 독자를 타임머신에 태운다. 주인공은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던 가수 넬과 자우림의 음악을 휴대용 CD플레이어로 듣고, 이마의 상처를 이유로 해리포터 시리즈의 ‘해리’로 불린다. 그는 “대중문화는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예술”이라며 “소설에 고전문학이 아닌 대중문화를 녹이면 작품의 수명이 짧아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풍속화(風俗畵)처럼 2000년대 대중문화를 박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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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등장인물의 언행을 통해 독자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드는 필력은 신작에서도 여전하다. 작품에는 학군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인 아파트별로 계급이 나뉘고, 대입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학원 외고 준비반에 다니며 빈번한 학교폭력에 신음하는 10대들의 팍팍한 삶이 녹아 있다. 그는 “내가 10대 때 겪은 삶을 되살리다 보니 당시 사회문제도 자연스럽게 반영됐다”며 “경제·문화적으로 과잉의 시대였던 2000년대에 시작된 현상이 현재까지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제목에 대해 “3차원의 복잡한 현실보다는 단순한 1차원의 세계에 살고 싶은 10대들의 마음을 담았다”며 “수학에서 1차원인 직선이 점과 점을 연결하는 것처럼 사랑이 등장인물들을 잇는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고 덧붙였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박상영#1차원이 되고 싶어#10대 퀴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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