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다시 보는 아드보카트와 떠나는 히딩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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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아드보카트 이라크 감독이 지난달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차전 한국과의 경기에서 팀을 지휘하고 있다. 이라크는 한국과 0-0으로 비겼다. 동아일보DB
딕 아드보카트 이라크 감독이 지난달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차전 한국과의 경기에서 팀을 지휘하고 있다. 이라크는 한국과 0-0으로 비겼다. 동아일보DB
이원홍 전문기자
이원홍 전문기자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우리는 낯익은 감독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딕 아드보카트 이라크 감독(74)이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을 이끌었던 그는 지금 한국과 같은 A조에 속한 이라크를 지휘하고 있다. 아드보카트는 한국 대표팀을 떠난 뒤 여러 클럽과 대표팀 감독을 지내면서 3차례 은퇴 선언을 했다가 복귀했다. 지난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감독을 맡았던 그는 올해 5월 은퇴를 선언했으나 7월 말 이라크 감독에 복귀했다. 이라크는 그가 대표팀 감독을 맡은 7번째 국가다.

한국의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75)은 최근 지도자 은퇴를 선언했다. 네덜란드령 퀴라소 대표팀을 이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그는 팀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다. 이에 “퀴라소 대표팀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내가 물러나는 것이 낫다”며 사임했고 아예 지도자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발언 중 주목받은 내용은 “내가 아드보카트처럼 할 것 같은가? 아니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처럼 은퇴 선언과 번복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뜻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두 감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같은 팀들을 맡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네덜란드 대표팀을 1994년 미국 월드컵 8강에 올려놓은 뒤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 대표팀을 1998 프랑스 월드컵 4강에 진출시켰다. 이어 히딩크 감독이 한국팀을 2002 한일 월드컵 4강에 진출시킨 뒤 아드보카트 감독이 한국을 이끌고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후에도 둘은 나란히 러시아 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이 밖에 히딩크는 호주, 터키, 중국(21세 이하), 퀴라소 대표팀을, 아드보카트는 아랍에미리트(UAE), 벨기에, 세르비아 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두 감독에 대한 간접 비교를 들었던 때는 2006 독일 월드컵 기간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히딩크 감독이 신화를 일군 한국팀을 이끌고 어떤 성적을 낼지, 히딩크 감독은 한국에 이어 호주대표팀을 이끌고 또다시 눈에 띄는 성적을 낼 수 있을지가 관심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당시 준우승팀이었던 프랑스를 상대로 1-1로 비기는 등 1승 1무 1패의 성적을 냈지만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했다. 이때 히딩크 감독은 호주를 32년 만의 본선 진출은 물론 16강으로 이끄는 돌풍을 이어갔다.

감독을 맡은 여건이 다르므로 두 감독을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서 만났던 네덜란드 기자들은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모두 뛰어난 전술가지만 히딩크에게는 한 가지 더 돋보이는 점이 있다고 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꿈을 제시하고 그 꿈을 향한 열정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히딩크를 사람을 다룰 줄 안다는 뜻의 ‘피플 매니저’로 부르며 당시 최고의 감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계획을 만드는 건 전술가의 몫이지만 그 계획과 전술을 실천하는 건 선수들이다. 선수들의 실천 의지, 열정의 정도에 따라 계획의 달성도는 달라진다. 히딩크는 전술가로도 뛰어났지만 공정함, 엄격함, 자신감 등을 바탕으로 애정과 믿음을 더해 선수들을 움직였다.

반면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을 떠난 이후 러시아 프로팀 제니트를 맡아 2008년 유럽축구연맹(UEFA) 슈퍼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히딩크 감독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아드보카트 역시 한때는 뛰어난 감독이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말이 지닌 권위는 크게 떨어져갔다. 그는 팀을 맡았다가도 조금 더 좋은 조건이 나오면 몇 개월 만에 금방 다른 팀으로 옮기고 수시로 은퇴 선언을 했다가 번복하고는 했다.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전술적 기능을 판매하는 용병으로서의 감독은 될 수 있어도 마음으로부터 이끄는 지도자는 되기 힘들다.

히딩크 감독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아드보카트 감독을 언급한 것은 자신과 비교되어 왔던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폄하의 뜻을 비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과 아드보카트의 말을 둘러싼 신뢰성의 차이를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히딩크 감독은 물러나는 순간에도 자신의 말에 대한 믿음을 주려고 했다. 신뢰 없이는 명장이 되기 힘들다.



이원홍 전문기자 bluesky@donga.com


#아드보카트#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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