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상점 7000곳 불탄 밤, 강렬한 오페라에 담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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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과 데릴라’ 제작진-주연 인터뷰
“나치의 탄압, 구약성서로 풀어내… 당대 음악 특징 모두 녹인 대작”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대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사진)를 국립오페라단이 7∼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구약성서의 영웅 삼손과 그를 꾀어 힘을 빼앗는 데릴라의 이야기를 담은 대작이다.

서울 서초동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지휘자 제바스티안 랑레싱, 연출가 아르노 베르나르, 7일과 9일 삼손을 노래하는 테너 크리스티안 베네딕트와 데릴라를 노래하는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을 만나 공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무대 배경을 1938년 독일에서 일어난 ‘수정의 밤(Kristallnacht)’ 사건으로 설정했다고 들었습니다.

베르나르(연출): 나치가 하룻밤에 유대인 상점 7000곳 이상을 불태우고 유대인 3만 명 이상을 체포한 사건이죠. 현대 관객들에게 오늘날의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생상스의 음악이 매우 강렬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바로크 오페라라면 이런 시도가 맞지 않겠죠.

서울 서초구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삼손과 데릴라’ 연습을 하고 있는 지휘자 제바스티안 랑레싱, 연출가 아르노 베르나르, 데릴라 역의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삼손 역의 테너 크리스티안 베네딕트(왼쪽부터).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울 서초구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삼손과 데릴라’ 연습을 하고 있는 지휘자 제바스티안 랑레싱, 연출가 아르노 베르나르, 데릴라 역의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삼손 역의 테너 크리스티안 베네딕트(왼쪽부터).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음악적으로 어떤 특징을 꼽을 수 있을까요.

랑레싱(지휘): 생상스는 이 작품에 당대 오페라의 모든 영향을 녹여 넣었습니다. 오라토리오(종교적 음악극)의 특징들도 있습니다. 하나의 장면에도 열다섯 개 이상의 음악적 경향들을 발견할 수 있는 오페라입니다.

베르나르: 음악들이 길고 독백과 같은 부분이 많기에 음악과 연출이 손잡고 더 강렬한 오페라적 요소들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페라에서 메조소프라노에게 타이틀 롤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요.

이아경(데릴라): 독창회나 갈라콘서트에서 이 오페라의 대표 아리아인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를 자주 불러왔지만 이번에는 다른 느낌이 될 겁니다. 이번 무대의 데릴라는 사랑이라곤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계략에만 충실한 히로인입니다. 비판이 많이 나올수록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테너가 부르는 노래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입니다.

베네딕트(삼손): 3막 초반에서 체포돼 몸이 묶인 삼손이 부르는 ‘나의 불행을 보라’ 같은 아리아는 매우 강렬한 곡입니다. 합창단이 함께해야 효과가 나기 때문에 잘 불리지 않는 것뿐이죠. 3막에는 ‘네가 말할 때 나는 귀가 먹었다’라는 대사가 등장합니다. 신의 말씀에 대해 영적으로 귀먹어 듣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의 본질은 인간들의 영적인 죽음에 있습니다. 삼손을 연기할 때 이 점에 신경을 쓰려 노력합니다.

―지휘자 랑레싱과 연출가 베르나르 두 분은 그동안 ‘마농’ ‘윌리엄 텔’ ‘호프만의 이야기’ ‘피델리오’ ‘라보엠’ 등 국립오페라단이 주최한 수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오셨습니다. 매번 먼 한국으로의 여행에 선뜻 응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랑레싱: 제 경우 한국의 훌륭한 성악가들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한국의 성악 영재 밀도는 세계 최고입니다. 그들이 해외에 나가 성공을 거두고 고국 무대에도 출연하면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이아경: 두 분은 최고의 합창단도 빼놓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죠. 특히 합창단에 고마워해야 할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잘하고, 너무 열심히 연습하고 계십니다.

이번 공연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고 노이오페라합창단이 출연한다. 8, 10일 공연에는 테너 국윤종과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출연한다. 대사제 역은 바리톤 사무엘 윤과 이승왕이, 아비멜렉 역은 베이스 전승현이 맡는다. 1만∼1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삼손과 데릴라#인터뷰#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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