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변종국]‘극단선택 대리점주 유족’ 두 번 울린 택배노조

변종국 기자 입력 2021-09-29 03:00수정 2021-09-29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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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이유로 “빚 4억” 거론하더니
이번엔 “골프 치는 고소득자” 주장
동료들 “노조책임 피하려 사실왜곡”
“남편이 유서를 엉뚱하게 썼다는 말인가요.”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한 김포 택배 대리점 소장 이모 씨(40)의 아내 박모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이 씨 유서에는 택배 노조원들의 집단 괴롭힘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었다.

택배노조는 이달 2일과 27일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이 씨의 유서 내용과 달랐다. 이 씨 사망은 노조원들의 괴롭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택배노조는 2일 기자회견에서 “고인이 4억 원의 채무를 지고 있다”고 공개했다. “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됐는지 제보가 들어오고 있으나 고인의 명예를 위해 제외한다”며 숨겨야 할 무언가가 있는 듯 암시도 했다. 노조는 ‘사실관계 조사’라며 사건 발생 사흘 만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이 씨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원청인 CJ대한통운이 대리점을 포기하게 하면서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고인이 빚에 시달렸다’고 주장하던 택배노조는 27일 기자회견에서 느닷없이 이 씨를 고소득자로 묘사했다. 이 씨가 생전에 골프를 치는 등 여가를 즐기던 모습의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무단으로 가져와 공개하며 “고인의 월 수익은 2000만 원을 상회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고인의 풍요로웠던 생활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세상을 등진 고인을 추모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노조가 공개한 사진 중 일부는 이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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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과 이 씨의 동료들은 “노조가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며 고인을 두 번 죽였다”고 반발했다. 이 씨의 유서에는 “강도 높은 노조 활동으로 하루하루는 지옥과 같았다”는 말은 있지만 택배노조가 주장하는 경제적 어려움과 원청 탓에 대한 얘기는 없다. 택배노조가 이 씨 죽음의 배경마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한 것이다.

유족과 이 씨 동료들은 택배노조의 원청 책임론도 왜곡이라고 지적한다. 이 씨와 가까웠던 한 대리점 소장은 “이 씨는 노조와의 갈등 때문에 대리점을 포기했다. 주변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그나마 잘 아는 일이 택배업이라 다시 대리점을 해보려고 입찰에 참여했다가 떨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원청에 이 씨 죽음의 책임을 따지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왜곡”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는 29일 조합원 자정 노력 등을 담은 최종 대책안을 공개한다. 이번에는 진솔한 사과와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이 담길지 궁금하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택배노조#대리점주 유서#노조책임#사실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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