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택동]성범죄자 화학적 거세

장택동 논설위원 입력 2021-09-01 03:00수정 2021-09-01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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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사람입니까? 악마보다 더한 악마예요.” 생후 20개월 된 손녀를 잃은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손녀를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는 사람은 딸과 함께 지내던 20대 남성 양모 씨였다. 범행을 저지른 뒤에도 양 씨는 손녀의 행방을 묻는 할머니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패륜을 저질렀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이에 법조계에선 양 씨에 대해 ‘화학적 거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화학적 거세의 정식 명칭은 ‘성 충동 약물치료’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감소시키는 약물을 투여해 성욕을 저하시키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화학적 거세 대상자를 정하는 요건은 까다롭다. 성범죄자 중에서도 성도착증 환자로서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사람으로 한정된다. 전문가의 감정을 바탕으로 검찰이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하고 법원이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체코나 미국 텍사스주 등에서는 성범죄자의 성기능을 영원히 잃도록 하는 물리적 거세가 허용된다. 반면 화학적 거세는 주기적으로 약물을 투여해야 하고, 투약을 중단하면 효과도 사라진다. 한국에선 법원이 최장 15년 동안 화학적 거세를 명령할 수 있다. 일각에선 남성호르몬 억제만으론 성범죄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재범을 막는 데 효과를 거두고 있다. 2011년 한국에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49명에게 시행됐는데, 이들 가운데 다시 성범죄를 저지른 사례는 없다.

▷성범죄라고 하더라도 형기를 마치고 나온 사람에게 추가 제재를 하는 것은 이중처벌이고 인권침해라는 시각이 있다. 뼈엉성증(골다공증), 우울증 등 약물 주입에 따른 부작용 발생 가능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신체의 자유, 자기결정권,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5년 화학적 거세 자체에 대해선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되며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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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범 가능성이 있는 범죄자라고 해서 무조건 무기징역 이상의 중형을 선고해 평생 감옥에 가둬둘 수는 없고, 이들의 인권도 존중돼야 한다. 그렇지만 재범의 위험을 방치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전자발찌를 채우거나 화학적 거세를 하는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2019년 미 앨라배마주에서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법을 발의해 통과시킨 스티브 허스트 의원은 인권침해라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조차 없는 어린아이가 성범죄 피해를 당하는 것보다 화학적 거세가 더 비인간적인 일인가.”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성범죄자#화학적 거세#성 충동 약물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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