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쑥쑥 크는 웹소설, 서울도서전 ‘특별 손님’으로… “출판시장 키울것”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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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의 시대’ 출판계 지각변동
모바일 플랫폼 타고 폭발적 성장… 시장규모 5년새 40배이상 커져
26년 서울국제도서전서 특별전… 출판계 “웹소설 도약 기회
인터넷소설 독자 끌어들여… ‘고급 중간 문학’ 시장 생길수도”

2016년 KBS 2TV에서 방영된 윤이수 원작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최고 시청률 23.3%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위쪽 사진). 2018년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역시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이다. 웹소설은 영상화를 통한 콘텐츠의 확장에도 적합한 장르로 각광받고 있다. KBS·tvN 제공
2016년 KBS 2TV에서 방영된 윤이수 원작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최고 시청률 23.3%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위쪽 사진). 2018년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역시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이다. 웹소설은 영상화를 통한 콘텐츠의 확장에도 적합한 장르로 각광받고 있다. KBS·tvN 제공
전채은 문화부 기자
전채은 문화부 기자
《열림원 출판사에서 2015년 3월 출간한 윤이수 작가의 장편소설 ‘구르미 그린 달빛’ 시리즈(전 5권)는 책일까? 대부분의 독자들이 “당연히 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네이버시리즈에서 2016년 11월부터 유료로 서비스하고 있는 해당 시리즈 5권의 전자책은 책일까? 이름부터가 전자‘책’이니 종이책의 물성을 띠고 있지는 않더라도 콘텐츠의 특성상 책으로 분류해도 무리는 없을 테다.

그렇다면 이 두 버전의 모태라고 볼 수 있는 웹소설은? 네이버웹소설에 연재됐던 이 작품은 2013년 10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총 131화에 걸쳐 서비스됐다. 책일까? 아니면 ‘웹소설’이라는 또 다른 콘텐츠로 분류해야 할까.

대한출판협회(출협)는 다음 달 8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성동구에서 개최되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올해 처음으로 웹소설·웹툰 특별전을 연다. 26년간 개최된 전통 있는 도서전에 처음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콘텐츠가 ‘책’으로 입성한다. 주일우 출협 부회장은 “출판계에서는 최근 수년간 웹 콘텐츠도 출판시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다”며 “웹소설이 단행본이 되고, 영화나 드라마가 되고, 넷플릭스 등 플랫폼을 통해 국경도 넘어가는 지금은 이야기의 힘이 어느 때보다 더 큰 시대”라고 말했다.》


출협은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인 ‘출판시장 통계’에 올해부터 웹소설과 웹툰을 연재하는 플랫폼 기업을 포함시켰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리디, 디앤씨미디어, 레진엔터테인먼트 등 굵직한 웹소설 출판사와 전자책 플랫폼이 대거 들어갔다. 출판계가 전자책뿐 아니라 웹소설도 책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 모바일 만나 폭발적 성장

바야흐로 ‘웹소설의 시대’다. 2019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2013년 약 100억 원에서 2018년 약 4000억 원으로 껑충 뛰어 40배로 커졌다. 지난해 웹소설 시장 규모는 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출협이 발표한 ‘2020년 출판시장 통계’를 보면 웹소설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 중 영업이익이 가장 컸던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380억 원으로 2019년에 비해 26.3% 증가했다. ‘출판시장 전체가 성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달 ‘2020 출판산업 실태 조사’에서 밝힌 국내 단행본 시장의 매출액은 2015년 7602억 원에서 2019년 7133억 원으로 줄었다. 전체 출판시장이 쪼그라드는 가운데서도 웹소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웹소설에 대한 수요는 국내에 컴퓨터가 도입되던 시절부터 꾸준히 존재했다. 이우혁의 소설 ‘퇴마록’은 1993년 PC통신 하이텔에 연재돼 뜨거운 반응을 얻은 판타지 소설로 2013년까지 외전이 출간될 정도로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았다. 1997년 ‘드래곤 라자’를 쓴 이영도도 이 분야의 대표주자다.

이 장르는 2000년대 들어 ‘인터넷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성장하자 독자층도 낮아져 10대 소녀들이 로맨스 장르의 주요 독자가 됐다.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이상 귀여니), ‘내사랑 싸가지’(이햇님)가 대표적이다. 이들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지며 활발하게 영상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대 포털 사이트가 이 분야 사업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웹소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모바일로 웹소설을 읽는 이들이 급증했고 팬픽, 판타지, 무협, 로맨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 출판계 웹소설 간 긍정적 피드백 기대


웹소설이 출판계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을 바라보는 관계자들의 시각은 양가적이다. “오랜 기간 출판의 한 종류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무시하다가 시장 규모가 커지니 이제 와서 ‘인정’해 주는 모양새”라는 토로와 “웹소설이라는 장르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동시에 나온다.

이미 커질 대로 커져 버린 웹소설 시장이 진통 없이 기존의 출판계에 편입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당장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도 발급받지 않는 웹소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일부 회차는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 웹소설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할 수 있을까?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현재 법이나 정부 지원은 전통적인 종이책 중심으로 마련돼 있다. 이를 개편하거나 웹 콘텐츠만을 위한 제도와 지원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기대감이 더 크다. 기존 출판계와 웹소설 시장 간 긍정적인 피드백을 전망하는 시선이 많다. 이를테면 웹소설을 통해 긍정적인 독서 경험을 축적한 독자는 웹소설과 결이 비슷한 장르문학의 독자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그동안 한국은 미국의 스티븐 킹 같은 ‘고급 중간 문학’이 없었다”며 “웹소설 독자들이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의 새로운 독자로 유입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한국에도 중간 문학 작가들이 다수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판계에서 웹소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평론이 활발히 이뤄지며 웹소설 전반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0년대 웹 기반 소설을 향유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가 젊은 평론가로 새롭게 유입되고 있어 탄력을 받기에도 적기다. 웹소설,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의 이문영 편집주간은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소설을 활발히 접했던 젊은 평론가들은 웹소설 같은 장르에 훨씬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며 “이 장르의 변천을 오래 지켜봐 온 입장에서 볼 때 이 시장은 연구자에게도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 국내 출판계 저변 확대 전망

웹소설 ‘해를 품은 달’(정은궐), ‘김 비서가 왜 그럴까’(김경미 정경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까페라떼, JINHA)는 각각 2012, 2018, 2021년 드라마화됐다. 이후 원작을 각색한 소설이나 포토에세이 등 단행본 출간까지 이어졌다. 소비자들이 웹소설, 드라마, 단행본 중 한 가지 콘텐츠로만 유입이 돼도 같은 이야기의 다른 버전을 궁금해할 여지가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구조다. 순문학과 그 외의 문학 간 경계가 뚜렷했던 한국 출판계에 웹소설은 분명한 균열을 내고 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나 미국 뉴욕 도서전같이 전통 있는 도서전에서는 순문학뿐 아니라 라이트노벨(라노벨)과 만화책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가 한자리에 모인다. 코스프레 복장을 한 만화책 애독자가 독일 문단에 한 획을 그은 페터 한트케(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뒤적이는 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는 가능하다. 어쩌면 앞으로 국내 도서전에서도 웹소설과 장르문학, 순문학 독자들이 한데 섞여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웹소설과 출판계의 만남은 각종 진통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 출판계의 저변을 넓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전채은 문화부 기자 chan2@donga.com


#웹소설#출판시장#드라마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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