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농어촌 낙후 주거환경 개선 겉핥기 아닌 근본 대책 절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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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충열 원광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1970년대 중반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농어촌 마을을 대상으로 한 주거환경 실태조사에 참여했었다. 이후 2007년 정부의 요청으로 시작된 농어촌 집 고쳐 주기 재능기부 활동에 참여하면서 매년 오지마을에서 10여 일 간 숙식하고 지내며 농촌 마을을 새롭게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실태조사 당시 보았던 주택들이 아직도 상당수 남아 있었다.

물론 당시 대부분이던 초가지붕은 슬레이트로 바뀌어 있고 부분적인 설비 개선은 이루어져 있었지만 재래식 옥외 화장실, 재래식 흙바닥 부엌, 높은 기단과 툇마루, 단열에 취약한 재래식 창호 등은 그대로 있었다.

14년간 오지 농촌 지역의 주거환경 개선사업에 참여하면서 당황스럽고 어려웠던 일들이 떠오른다. 학생들의 서툰 작업을 도와준다는 할아버지의 시범 곡괭이질 중 눈에 돌이 튀어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던 일, 오지 산골 마을에서 정화조 매설을 위해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 내려가다가 지하수가 용출되어 애를 먹었던 일, 공사가 끝날 때쯤 자제분이 갑자기 나타나 무리한 추가 공사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다 필요 없으니 원상태로 복원해 달라고 해 황당했던 일 등이다. 그러나 힘들었던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평생 이 집에서 편히 잘 살아왔고 이렇게 살다 죽으면 된다며 한사코 주택 개조를 거부하셨지만 입식 부엌과 실내 화장실이 완성되자 새 부엌이 너무 좋아 그렇게 소중하다던 안방을 포기하고 이제는 부엌에서 주무신다던 할머니의 수줍은 미소에서 삶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또 연년생인 5남매와 한방에서 살던 다문화 가정의 주거공간을 개조해 부부 방과 남녀 아이들 방 2개를 확보해 준 후 부부의 금실도 좋아져 늦둥이 막내까지 다시 갖게 되었다는 후문들을 접했을 때의 통쾌함 등 수많은 기억이 뇌리를 지나지만 어려웠던 일보다는 크게 감동하였던 일들이 많은 것 같다.

그동안 정부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농어촌 주택에서 보완해야 할 시급한 문제점들은 많이 남아있다. 난방을 전기장판 등에 의지하는 경우에는 겨울철 외풍과 추위를 막기 위해 비닐로 외벽을 감싸는 형태가 많이 보인다. 이는 여름철 무더위와 실내 공기 오염으로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창문이 있는 방풍실을 설치하고 외벽 단열과 창호 교체 공사가 병행되어야 한다.

또 농촌 지역에는 허리가 굽은 노인들과 무릎 관절 이상이 있는 분들이 많다. 최근 전동 휠체어 등이 보급되고는 있으나 전통 주택의 높은 기단이나 높이차가 있는 출입구 등은 장애 요소가 되므로 주택 전반의 무장애 공간으로의 변환이 요구된다.

다문화 가정의 경우 2, 3명 이상의 다자녀 가정이 일반적이며 이들 중 상당수는 부부와 자녀가 한방에서 함께 기거하고 있는데 농촌의 중요한 자원인 아이들에게는 부부 침실과는 분리된 공부방 확보가 시급한 문제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며 정밀한 검토 후 증축 등의 공사로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다.

소외계층의 집 고쳐 주기 봉사활동은 이제 일상적인 활동으로 정착된 것 같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도배와 장판 교체, 페인트칠, 부분적인 창호 교체, 부엌 설비 교체 등 단편적인 활동들이 단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여러 단체가 소규모로 단기간 활동한 결과라고 보인다.

주택은 가족의 생활을 담는 그릇으로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단편적인 개선만으로는 쾌적한 주거환경 확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이제 전문성을 지니고 있고 여름방학을 이용해 장시간 양질의 노동력 제공이 가능한 대학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대학에서 부족한 전문적인 시공 능력은 민간 전문 단체에서 도와주는 형태로 취약계층의 주거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다. 이러한 활동에는 협업의 구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재단의 노력과 각 대학 관련 학과의 적극적 참여, 정부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윤충열 원광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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