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송기 3대 급파…아프간인 400명 서울行 탈출작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4일 21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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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4일 탈레반을 피해 자국을 탈출하려는 아프가니스탄인 가운데 우리 정부의 현지 활동에 협력해온 이들과 그 가족들을 국내로 이송해 피란처를 제공하기로 했다.

외교부는 이날 “우리 정부 활동을 지원해온 현지인 직원과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우리 군 수송기 3대를 아프가니스탄 인근 국가에 보내 작전을 수행 중”이라며 “이들은 수년 동안 주아프간 한국 대사관, 한국 병원, 직업 훈련원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도 이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 정부가 한국군 및 구호단체 종사자들과 함께 일했던 아프간인 400여 명을 서울로 대피시키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난민 수용에 대한 한국 내의 일부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우리를 도왔고 인도주의적 우려와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감안할 때 한국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한 소식통이 말했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들 아프간인 중 상당수가 2001~2014년 사이 아프간에 파병된 한국군을 돕거나 2010~2014년 재건임무에 참여한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또 이들이 주로 의료, 기술, 통역 관련 업무를 맡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자국을 탈출하려는 제3국 현지인을 인도적 차원에서 국내로 대규모 이송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한 이후 외국 정부와 일했던 현지인 및 가족들에 대한 보복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 정부, 자국 탈출 현지인 첫 국내 이송
한국 정부는 미국의 지원 요청에 2001년 아프간에 비전투부대를 파병했다. 군은 2007년 12월 철수했지만 정부는 최근까지 국제사회와 함께 아프간 재건 지원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지방재건팀(PRT)을 보내 현지 병원과 직업훈련원을 운영하면서 다수 현지인을 고용했다. 한국의 현지 재건 및 의료 지원, 대민 구호 활동에 도움을 준 현지인들과 그 가족들이 이번 이송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관측된다.

전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아프간인 조력자들을 국내로 수송할 것임을 밝혔다. 서 실장은 “현지에서 우리한테 도움을 줬던 아프간 현지인 문제가 시급하다”며 “짧게는 1년, 길게는 7, 8년을 우리 공관과 병원 등에서 근무한 분들인데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현재 아프간 현지에서는 탈레반들이 외국 정부에 조력한 사람들을 ‘부역자’라며 축출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 실장은 “우리로서는 그분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확보해드려야 하는 국가적 문제의식과 책무를 갖고 있다”면서 “이분들의 국내 이송 문제를 포함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법무부, 인도적 특별체류 자격 부여 검토
이들이 한국에 도착하면 어떤 자격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체류할지 등이 향후 관심사다. 정부는 이미 한국에 체류 중인 아프간인들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특별체류를 허가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군 수송기로 한국에 도착한 이들에게도 비슷한 대우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4일 오전 정부 과천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얀마 사태 때도 국내 체류 미얀마인들에 대해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시행했다”며 “국내 체류하는 아프간인들에 대해서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합법적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아프간인은 417명이다. 이중 120명은 올해 안에 체류기간이 만료돼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본국이나 다른 국가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인도적 특별체류 지위를 얻으면 임시로 국내 체류를 허용하게 된다. 체류 기간이 지난 경우 불안정한 아프간 상황 등을 고려해 국가 정세가 안정된 후 자진 출국할 수 있도록 한다.

법무부는 한국 공관 등에 근무했던 아프간 현지인들이 피란을 위해 국내로 올 경우 마찬가지로 인도적 특별체류 자격을 부여할 지에 대해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법무부 차원에서 다각도로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이와 별개로 주한미군 기지를 아프간 난민들의 피난처로 삼는 계획은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지리적 이유와 물류상 이유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 있는 군사기지를 임시 수용소로 사용하는 방안을 택하지 않기로 했다”며 “미국이 아프간 난민을 주한미군 기지에 체류시키는 방안을 처음 내놓았을 때 한국 정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미국은 애초 아프간인 2000명을 2주 동안 임시로 경기 평택에 있는 주한미군 험프리스 기지에 받아줄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진우기자 niceshin@donga.com
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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