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구로병원, 한국 의료 산업화 이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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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바이오 클러스터 ‘G밸리 의료기기 개발지원센터’ 조성
위탁운영 맡은 고려대 구로병원, 연구개발 등 기업 맞춤 지원
바이오산업 인프라 확충하고 의료기기 산업경쟁력 강화 일조

고려대 구로병원은 의료기기 개발 기획부터 제품 시판까지 전주기를 지원할 수 있는 연구시설과 장비, 전문가 자문 시스템을 갖추고 의료창업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사진은 박일호 고려대 구로병원 이비인후·두경부외과 교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개발기업 ㈜래피젠 관계자에게 제품 관련 컨설팅을 진행하는 모습.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고려대 구로병원은 의료기기 개발 기획부터 제품 시판까지 전주기를 지원할 수 있는 연구시설과 장비, 전문가 자문 시스템을 갖추고 의료창업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사진은 박일호 고려대 구로병원 이비인후·두경부외과 교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개발기업 ㈜래피젠 관계자에게 제품 관련 컨설팅을 진행하는 모습.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 규모가 2015년 약 89조7000억 원에서 2020년 약 234조 원으로 연평균 21%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 3대 산업 중 하나로 바이오헬스 분야를 선정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의료기기 업체의 81%가 매출 10억 원 미만으로 여전히 영세하고 수입 의료기기 점유율은 63%에 달한다.

바이오 클러스터, 해외 헬스케어 산업의 중심

해외에서는 바이오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헬스케어 산업을 활성화하고 있다. 미국의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는 세계 최대 바이오 클러스터로 손꼽힌다. 매사추세츠 병원,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등이 참여해 연구중심병원과 유수 대학의 기초 연구를 중심으로 의료산업 개발의 전주기를 지원하며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의사들의 임상경험을 반영해 창업, 운영 중인 기업도 41개나 된다. M.D 앤더슨 암센터가 운영 중인 ‘텍사스 메디컬 클러스터’는 텍사스 어린이병원(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병원), 텍사스 심장연구소 등이 주축이 돼 병원들의 중점 연구가 기술 상업화로 이어진 미국의 대표 ‘병원중심 클러스터’다. 병원과 주변 기업과의 창업이 활성화되면서 지역 경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서울시-산단공 ‘G밸리 의료기기 개발지원센터’ 투자


서울시는 국가적으로 바이오산업 인프라를 확충하고 미래의료기술 융합을 통한 의료기기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G밸리(서울디지털산업단지)를 한국형 바이오 클러스터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작년 말 한국산업단지공단(산단공)과 ‘G밸리 의료기기 개발지원센터’ 조성·운영 협약을 체결했다.

G밸리는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의료기기기업, 대학병원, 시험평가기관, 정부기관이 밀집돼 있는 지역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메디클러스터가 형성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G밸리에는 서울시 의료기기 업체의 32.4%, 사물인터넷(IoT) 잠재산업군 산업체의 29.1%가 있다. 스마트 헬스케어 기기, 융복합 의료기기 산업 등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를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한 셈이다. 게다가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한국산업기술시험원 등 의료기기 신고와 인증을 지원하는 기관이 함께 자리해 의료산업화에 최적화된 환경이 조성돼 있다.

서울시와 산단공은 G밸리 의료기기 개발지원센터에 우선 3년간 약 120억 원을 투입한다. 기반 조성기-성장기-성숙기를 거쳐 국내 최고의 의료기기 클러스터로 키워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센터는 약 200평 규모의 공간에 기업지원공간, 기초실험 연구실, 기술지원실 등이 갖춰질 예정이다. 이곳에서 △의료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헬스케어 기기 개발 △의료기기 디자인, 임상, 사용성 평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신종 감염병 진단을 포함한 체외진단기기 개발 △기술 사업화(시제품 제작, 단계별 컨설팅, 인허가) △투자유치 등을 종합 지원한다.

센터 위탁운영기관 고려대 구로병원 선정


서울시가 센터를 조성해 한국산업단지공단에 위탁했다. 위탁운영 기관은 고려대 구로병원이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센터 총괄책임을 맡은 용환석 영상의학과 교수를 주축으로 기술파트(윤수영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실증파트(박일호 이비인후·두경부외과 교수), 기획파트(조금준 산부인과 교수)로 나눠 각 분야별 전문 연구교수와 연구원들이 실질적인 센터 운영을 담당할 계획이다.

용환석 교수는 고려대 구로병원이 총괄하고 있는 ‘연구중심병원 육성 R&D 사업’ 중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체외진단용 의료기기 개발전문가인 윤수영 교수는 고려대 의과대학 구로의과학연구지원소 소장으로 연구 관련 인프라를 총괄한다.

박일호 교수는 ‘의료기기 사용적합성 테스트센터’와 ‘의료기기 임상시험센터’의 센터장이다. 의료기기 개발 역량 강화를 위한 경험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조금준 교수는 임산부와 태아 건강증진을 위한 의료기기와 솔루션 제공 기업인 ㈜엠엔비메디텍 대표이사다.

10월 G밸리 의료기기 개발지원센터가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하면 고려대 구로병원은 G밸리 소재 의료기기 기업의 성장단계별 맞춤형 기업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국제 의료기기 임상시험 인증’ 획득


고려대 구로병원은 의료기기 분야에서 창업과 경영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기업의 원활한 해외 진출을 위한 국제 인증지원 인프라도 갖췄다. 작년 비유럽 국가에서는 최초로 ‘국제 의료기기 임상시험 인증(ISO 14155)’을 획득해 국내 의료기기 개발 업체들이 해외시장 진출 시 필요한 안정성 시험을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진행할 수 있게 했다. 이에 기업들은 개발 기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지난해부터 유럽시장 진출을 위해 ISO 14155 획득이 필수조건이 되면서 국내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 국제 연구대상자 보호 프로그램 인증(AAHRPP),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임상시험 수행 기관임을 인증하는 FERCAP 국제인증을 갖추는 등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임상시험 수준을 인정받으며 독보적인 위치를 다져오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2005년 국내 최초로 의료기기에 특화된 별도의 임상시험센터를 설립해 운영하며 의료기기 개발기업의 임상시험과 시장진출을 지원해왔다. 2009년엔 ‘보건복지부 지정 의료기기 임상시험센터’로 공식 지정됐다.

2009년 신종플루 팬데믹 사태 이후에는 ‘신종 인플루엔자 범부처 사업단’(총 연구비 621억 원)을 총괄하며 SK 케미칼과 협력해 세계 최초 4가 세포배양 독감백신 개발을 이끌기도 했다. 의료기기 개발 전주기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2014년 ‘의료기기개발 중개임상지원센터’를 개소하고 의료기기 연구개발 활성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2017년엔 ‘의료기기 사용적합성 테스트센터’를 열어 기업들이 실제 임상 현장과 같은 환경에서 의료기기를 테스트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작년엔 복지부로부터 ‘2020 연구중심병원 육성 R&D 사업’ 총괄 기관으로 선정돼 2028년까지 총 358억 원 규모의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인공지능·빅데이터 기반 지능형 혁신 의료기술 플랫폼 고도화 사업’을 총괄하며 미래융합형 혁신 의료기술 실용화를 목표로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등 4개 기관과 10개 기업이 포함된 산·학·연·병 협력조직을 구성해 사업을 진행 중이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폭넓은 의료 연구와 사업화 인프라를 바탕으로 2016년 연구중심병원으로 재지정됐고 2019년 3차 지정을 거치며 국내 대표 연구중심병원으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병원 네트워크-의료진 동원… G밸리 헬스케어 사업 적극 지원”
미니 인터뷰 ㅣ 한승규 고려대 구로병원 병원장

한승규 고려대 구로병원 병원장.
한승규 고려대 구로병원 병원장.
▽홍은심 의학기자=고려대 구로병원이 G밸리 의료기기 개발지원센터 위탁운영 기관으로 선정됐다.

▽한승규 고려대 구로병원 병원장=위탁운영 기관으로 선정되기 전부터 고려대 구로병원은 연구 사업화의 선두주자로 손꼽혀 왔다.

2013년 연구중심병원 선정 초기부터 국내 10개 연구중심병원 중 가장 많은 자회사(9개)를 만들었고 연구 사업화에 두각을 나타냈다. 2019년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보건의료분야 기업 육성·지원을 위한 ‘개방형 실험실 구축사업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기업체와 의료진 간의 공동연구를 도왔다. 의료기기 개발의 기획부터 제품 시판까지 모든 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장비와 공간, 전문자문시스템 등 의료 산업화에 최적화된 내부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병원이다.

개발 전반에 필요한 각 분야의 외부 네트워크도 폭넓게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료기기 공업협동조합 등 보건의료 산업단체를 비롯해 △한국벤처투자와 글로벌 헬스케어 펀드 등 펀드기관과 개발자금 기관 △보건산업 혁신창업센터 등 창업 사업화 지원 기관 △오송 첨단의료산업단지진흥재단과 대구경북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의료기기 연구개발 지원 기관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며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G밸리 의료기기 개발 지원센터는 임상의 자문·컨설팅, 공동연구, 전임상·임상시험 지원, 제품 개선, 기술 마케팅, 투자 연계, 교육 등 기업이 필요로 하는 내용들을 고려대 구로병원의 노하우와 의료진 네트워크를 동원해 지원할 계획이다.

▽홍 기자=국내에 이미 다양한 형태의 메디컬 클러스터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는 사례는 없는 것 같다.

▽한 병원장=정부 주도로 운영 중인 오송 첨단의료복합단지는 기초연구 등 연구개발 지원을 한다. 지자체 주도의 원주 의료기기 테크노밸리도 도내 의료기기 업체의 사업화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공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

헬스케어 산업은 병원이 연구개발(R&D)의 주체이자 수요 주체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국내 대학병원들은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해 연구보다는 진료에 초점을 두고 있어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위한 투자와 환경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 헬스케어 스타트업, 기업은 의료 현장의 요구를 파악하기 위해 의료전문가, 의료기관, 자금조달 전문가와 협업의 필요성이 크지만 의료진과의 소통채널 부족, 비용 부담,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실제 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메디컬 클러스터 성공을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헬스케어 단지가 아닌 산·학·연·병이 서로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한다. G밸리는 이미 많은 국내 바이오 헬스케어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여기에 기업을 지원하는 센터가 들어선다면 분명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홍 기자=의료기기 개발 특성상 임상 현장에서의 요구도 중요할 것 같다. 의사들의 관심과 호응이 필요할 것 같은데….

▽한 병원장=그렇다. 기업은 병원들과의 네트워크,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센터는 기업과 의료전문가의 소통채널 역할을 하고 효과적으로 협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기업이 요구하는 적절한 의료전문가와 매칭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가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 구로병원의 다년간의 경험을 잘 활용한다면 G밸리 사업이 우리나라 헬스케어 사업의 성공사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헬스동아#건강#의학#고려대#구로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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