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교시 영어, 2교시 로봇공학… 원하는 과목 ‘콕’ 집어 들으니 집중도 ‘쑥’

대구=최예나 기자 입력 2021-07-08 03:00수정 2021-07-08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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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 시행하는 대구 호산고
40∼50개 과목 중 수요 맞춰 개설… 수강신청 위해 교사와 상담하기도
빅데이터-로봇 교육 등 특정 분야, 대학 교수나 외부 전문가가 강의
2025년 학점제 전면 도입 앞두고, 교사 수업부담 덜어줄 대안 필요
대구 달서구 호산고는 대학생처럼 수강신청기간에 학생이 직접 원하는 과목을 선택한다. 같은 반 학생이어도 모두 시간표가 다른 이유다. 2일 ‘응용프로 그래밍 개발’ 시간에 학생들이 자신들이 개발한 음성인식 자판기(위쪽 사진)와 자동 손소독 검사기를 설명하고 있다. 대구=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자동 손 소독 검사기를 학교에서 실제로 써보게 하려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네요.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열심히 손을 기계에 대봐도 소독제가 나오지 않아 당황하던 박성해 군(17)이 소감을 말하자 친구들이 박수를 쳐줬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하나인 ‘티처블 머신’을 활용하기 위해 소독기 아래에 손을 갖다대는 사진을 500장 넘게 촬영해 인식시켰지만, 기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박 군이 자리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손을 내밀자 소독제가 쭉 나왔다. “우와!!!” 친구들 모두 함성을 치며 기뻐했다.

2일 대구 달서구 호산고 2학년 ‘응용프로그래밍 개발’ 수업에서는 박 군처럼 학생들이 한 학기동안 직접 개발한 결과물들을 발표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아이들을 위한 음성인식 자판기, 시각장애인이 갖다대면 어떤 물건인지 말해주는 이미지 내레이터, 4족 보행로봇 등 여러 제품이 나왔다. 학생들은 직접 코딩을 하고, 학교에 있는 3D프린터와 레이저 커팅기로 제품을 만들었다.

○진로와 적성 따라 원하는 과목 신청

일반고에서 보기 어려운 수업이지만, 호산고는 일반고다. 2025년 도입되는 고교학점제의 연구학교인 호산고는 2020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시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기 진로에 맞는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 듣는데, 그중 융·복합 로봇공학 과정도 있다. 이 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은 1학년에 △로봇 소프트웨어 개발, 2학년에 △로봇 하드웨어 설계 △전기전자기초 △응용프로그래밍 개발, 3학년 때는 △로봇프로젝트 △로봇지능개발 과목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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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학생들은 하루 7교시 중 적게는 2교시, 많게는 5교시를 자기 선택에 따라 반을 이동하며 공부한다. 예를 들어 3학년 8반 학생들의 경우 1, 2, 5교시는 △언어와 매체 △영어 독해와 작문 △운동과 건강 과목을 함께 듣고, 다른 시간에는 각자 시간표에 따라 흩어져 수업을 듣는다. 한 학생은 △가정과학 △심화수학Ⅱ △융합과학 △진로영어, 다른 학생은 △생활과 과학 △심리학 △교육학 △고전읽기를 듣는 식이다.

학생들이 이처럼 여러 과목을 각자 선택하도록 하는 데는 꼬박 1년이 걸린다. 호산고는 ‘호산 드림캡처’라는 교재를 만들어 우선 1학년 진로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자기 적성과 진로를 찾을 수 있게 도왔다. 2학년부터 들을 선택과목 선정은 1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호산고는 40∼50개 선택과목 종류를 학생들에게 모두 제시하고 수요 조사를 한다. 개설할 과목을 정해 그중에서 학생들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선택이 먼저다. 수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교사들이 8월에 개설할 과목을 정하고, 9월에 수강 신청을 받는다. 그리고 10월에 정정 기간을 거쳐 11월에 최종적으로 과목별 담당 교사를 배정한다. 반별 최종 시간표가 나오는 건 12월이다.

수강 신청 사이트가 열리기 전 학생들은 대학생들처럼 삼삼오오 모여 “교대에 가려면 어떤 과목을 들어야 할까?”, “나 이번에 이런 과목 들으려는데 어떨까?” 고민한다. 도서실에 가서 교과서를 찾아보고, 담임교사나 교과교사와 상담하기도 한다.

○가르치고 배우고… 1인 다역하는 교사들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건 학교 밖 전문가에게도 배울 수 있어서다. 학교에서 개설하기 어려운 과목은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으로 개설해 토요일에 들을 수 있다. 호산고에는 계명대 교수가 강의하는 ‘빅데이터 분석’이 개설돼 70% 이상의 외부 학생이 함께 듣는다. 인근의 다른 고교는 ‘건축도면해석과 제도’, ‘상담심리’ 과목을 개설했다. 이용호 교감은 “이 밖에도 대구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대구온라인 공동교육 캠퍼스’를 통해 국제법, 경제, 스페인어는 교수에게 실시간 쌍방향으로 수업을 듣는다”며 “다른 학생들이 학교에서 개설된 선택과목을 들을 때 이 학생들은 다른 교실로 가 교육청에서 제공한 크롬북으로 수업을 듣는다”고 설명했다.

외부 전문가가 학교로 직접 와서 가르치는 과목도 많다. 융·복합 로봇공학 과정이 대표적이다. 유기현 교사(융·복합 로봇공학 과정 담당 부장)는 “로봇교육 전문업체에서 나와 수업을 진행하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대학원생이 학생들과 로봇 동아리에서 프로젝트를 한다”고 설명했다. 강사는 교원자격증이 없다보니 단독 수업은 불가능하다. 이에 교사와 ‘코티칭(co-teaching)’을 한다. 유 교사는 “수업 보조 역할을 하며 학생 활동을 관찰하고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고 설명했다.

고교학점제는 교사들에게 매우 부담이 크다.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려면 교사 1명이 여러 과목을 맡아야 한다. 서지원 교사(교육과정부장)는 “1학기에 한문교사가 보건 과목을 가르쳤는데, 방학동안 교육청에서 개설한 연수과정을 들으며 공부했다”며 “아이들이 ‘꼭 듣고 싶어요’, ‘제 진로에 꼭 필요해요’라고 요구하고 자기가 선택한 거라고 수업 참여도도 좋으니 교사들이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사 풀 구축 등 교육청 역할 중요

교육부는 2025년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 특정 교과의 경우 교원자격증이 없는 강사를 기간제 교원으로 임용해 수업과 평가 권한을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교원단체는 전문성이 없다며 반발한다. 하지만 국가교육회의가 지난달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1.5%는 교원자격증이 없는 외부 전문가가 단독 수업을 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는 37.2%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방의 경우 교원자격증이 있는 강사로만 제한하면 인재풀이 너무 좁다”며 “충분히 사전 연수를 거쳐 수업하고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학교가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호산고도 처음에 고교학점제를 시작하며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기가 들을 과목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열심히 참여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유 교사는 “이제 대학 입시에서 고교 정보가 블라인드 처리되는데, 다른 학교와 개설 과목이 확실히 차별화돼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교육청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 교사는 “대구시교육청의 경우 대학에 공문을 보내 강사 풀을 구축해뒀다”며 “덕분에 ‘예체능 실기’ 과목들을 대학 강사가 운영해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2025년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란?
일정 학점 취득해야 졸업
등급제 아닌 성취도로 평가

현 초등학교 6학년이 고등학교에 가는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된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생처럼 학생이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고, 일정 학점을 취득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현재는 각 학년 수업일수의 3분의 2 이상만 출석하면 진급과 졸업이 가능하지만, 2025년부터는 이와 함께 3년간 192학점 이상을 듣고 학업성취율이 40% 이상이어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절대평가 방식의 성취평가제가 확대된다. 현재는 진로선택과목을 제외하고는 석차등급제다. 하지만 석차등급제 하에서는 학생들이 내신을 우려해 수강 인원이 많은 과목만 선택할 수 있다. 이에 고교학점제에서는 절대평가제인 성취평가제를 도입해 △A(90% 이상) △B(80% 이상∼90% 미만) △C(70% 이상∼80% 미만) △D(60% 이상∼70% 미만) △E(40% 이상∼60% 미만)로 평가한다. 학업성취율 40% 미만은 I(Incomplete)로 분류돼 별도 과제나 온라인 수업 등 보충 과정을 들어야 E로 끌어올릴 수 있다. 다만 공통과목은 석차등급도 병기한다.

고교학점제는 진보와 보수 성향을 막론하고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의 반발이 크다. 교원단체는 교육부가 학령인구 감소를 고려해 신규 교원 임용 규모를 감축하기로 했는데 고교학점제를 하려면 교원부터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부모단체는 지방의 경우 다양한 과목을 개설할 강사 풀이 부족해 지역격차가 생길 수 있고, 대입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운다. 교육부는 2028학년도 대입 방향과 미래형 대학수학능력시험 논의를 올해 착수했다.

대구=최예나 기자 yena@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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