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선 학원 가느라 바빴는데, 농촌에선 하루하루가 새로워요”

화순=최예나 기자 입력 2021-06-24 03:00수정 2021-06-2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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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천태초 ‘농촌유학’ 인기
폐교 위기 이겨내려 변화
온마을이 힘모아 ‘손님 맞이’
전남 화순군 천태초의 4학년 7명 중 3명은 서울과 광주에서 온 ‘농촌유학’ 학생이다. 전학 온 첫날부터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공을 차며 친해졌다는 아이들은 “매일 즐거운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얼마 전 부화한 병아리한테 처음으로 햇빛을 쏘여주러 나간 아이들(위쪽 사진). 처음에는 유학생들이 발표를 안 했지만 이제 모두가 손을 들고 말한다(가운데 사진). 21일 하지를 맞아 텃밭에서 감자를 캐고 즐거워하는 모습. 화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자, 지금부터 쉬는 시간이야.”(담임교사)

“와아아아∼ 나가자!”(아이들)

21일 전남 화순군 천태초 4학년 교실. 아이들이 담임 박지선 교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당탕 소리를 내며 복도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복도에 놓여 있던 작은 상자로 향했다. 상자 안에 담겨 있던 건 삐약삐약 소리를 내는 샛노란 병아리들이었다.

“얘가 1세야.” “태어날 때를 내가 기억하는데 1세는 날개가 더 하얘. 얜 5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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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9일 전 목격한 병아리 5마리의 부화 장면을 종알종알 풀어냈다. 10년간의 인생에서 처음 본 잊을 수 없는 기억인 듯했다.

아이들은 병아리에게 햇볕을 쏘여줘야겠다며 힘을 합쳐 상자를 들었다. 8개의 손은 종이상자를 들고, 6개의 손은 혹시라도 병아리들이 놀랄까 햇빛을 가렸다.

박 교사는 “얼마 전 아이들이 다른 교사와 함께 병아리집을 만들었다”며 “원래 이곳에 있던 아이들에게도, 서울이나 광주에서 온 아이들에게도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매일이 새롭다”고 말했다.

○코로나도 못 말린 농촌 학교의 재미
천태초는 도시 등 다른 지역의 학생들을 받아 가르치는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현재 전교생 34명 가운데 ‘외지’에서 온 학생은 서울 3명, 광주 10명, 경기 2명, 화순읍 3명 등으로 절반이 넘는다.

이 학교에서 유학 중인 주원이는 “얘가 같이 오자고 했다”며 규호를 가리켰다. 두 아이는 서울에서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다 유학을 온 경우다. 규호 엄마가 천태초의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알고 주원 엄마에게 소개하고, 각자의 중학생 형 누나와 함께 올 3월에 왔다고 했다.

“처음엔 엄마도 보고 싶고 어색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공간이 넓고 놀이를 많이 해서 좋아요. 서울에서는 영어 국어 피아노 태권도…, 학원을 매일 갔어요. 여기서는 안 가서 좋아요.”

학원에 안 가지만 배우는 건 더 많다. 아이들은 홈스테이를 하는 ‘할머니’ 집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매일 오전 8시 40분에 학교에 와서 오후 4시 20분에 떠난다. 토요일에도 오전 9시부터 낮 12시 10분까지 학교에 있다. 주원이와 규호가 다니던 서울 학교는 전교생이 1200명이 넘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원격수업을 병행했지만, 전교생이 34명인 천태초는 지난해부터 100% 등교수업 중이다.

천태초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 방과 후에 광주에 있는 수영장을 단독으로 빌려서 수영을 배우기도 한다. 1학년부터 시작해 6년간 모든 영법을 마스터하는 게 목표다. 겨울방학에 바로 탈 수 있도록 11월에는 실내스키 기본 교육도 받는다. 5월에는 운동장에서 텐트 치고 캠핑을 했고, 다음 달에는 여수에 바지락과 망둥어를 잡으러 갈 예정이다. 바이올린, 스크린 골프, 코딩, 사진, 인라인 등 외부 강사를 초빙해 다양한 경험을 한다.

○도시에선 몰랐던 ‘밀착교육’의 힘
아이들이 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천태초는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살려 담임교사가 아이 한 명 한 명을 밀착 지도한다. 그 덕분에 천태초에는 최근 몇 년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처음 생겼다. 바로 서울과 광주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었다. 분수와 구구단을 모르고, 알파벳은 A와 B밖에 모르는 아이들이 나왔다.

그뿐만 아니었다. 매일 학교에 와서 앉아 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다. “왜 그렇게 엎드려 있냐”고 교사가 물으면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연필을 제대로 잡지 못해 주먹으로 움켜쥐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띄어쓰기를 하나도 못하고 맞춤법은 다 틀린 글을 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생 수가 적다 보니 모든 수업이 토론과 발표로 이뤄지는데, 유학 온 아이들은 처음에 입을 열지 않았다. “발표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박 교사는 “지난해 코로나19로 학교에 잘 못 간 탓이 컸다”며 “직장 일이 바빠 상황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던 부모님들이 아이들 상황을 전해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온전히 교사 몫이다. 교사들은 주 3회 방과 후 아이들을 따로 모아 지도한다. 아이들에게 별도 과제를 내주고 쉬는 시간에 봐주는 것은 물론이다. 담임이 직접 원고지 노트를 사서 일기와 독후감을 쓰게 하고 일일이 고쳐주기도 한다. 멀리 있는 부모님을 위해 매일 아이들 사진을 찍어 네이버 밴드에 올리고 전화 상담도 진행한다. 그 덕분에 박 교사의 퇴근 시간은 저녁 7시를 넘기기 일쑤다. 멀쩡한 집 대신 학교 관사에 살며 아이들을 챙긴다.

그는 “이 학교에 다니니 좋고 계속 다녀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가 천태초에서 건강하게 지내며 배운 게 앞으로 살아가는 힘이 되겠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농촌유학으로 이겨낸 폐교 위기
‘학생과 학부모에게 사랑받는 학교’가 되기 위한 이 같은 천태초의 노력은 농촌학교가 처한 위기와 맞닿아 있다. 급격한 농촌지역 학생 수 감소로 학생을 구하지 않고는 폐교를 면치 못할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019년 2학기부터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1924년에 개교해서 한때는 학생이 1000명에 달했지만 몇 년 전에는 24명까지 줄었거든요.”(이현희 교장)

이 교장과 교사들은 도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학교를 새로 단장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싹 바꿨다. 각종 공모사업에 참가해 모든 아이들에게 개인용 자전거와 바이올린, 태블릿PC를 사주고 외부 강사도 모셔왔다.

마을 주민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농촌유학 사업을 위해 2020년 마을과 학교가 함께 협동조합을 세운 것. 그 덕분에 광주 학생들은 부모 없이 혼자 와도 숙박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다. 또 귀농 후 전원주택을 지은 부부가 농가 부모를 자처해 서울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이발해 준다. 아이들의 식습관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서울 학생의 경우 학교 수업과 홈스테이 비용을 합쳐 농촌유학 온 학생 1명이 내야 할 비용은 월 80만 원이지만 실제로는 20만 원만 낸다. 전남도교육청과 서울시교육청이 각 30만 원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천태초는 1학기에는 ‘홈스테이형’만 운영했지만 2학기에는 가족들이 머물 한옥마을과 폐교를 구해서 ‘가족체류형’도 운영할 예정이다.

하지였던 이날, 박 교사는 “오늘 하지를 맞아서 감자 캐기로 했지?”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다리 아픈데 텃밭까지 자전거 타고 가도 돼요?”라며 자전거 7대를 타고 사라졌다.

농촌유학 신청하세요
전남도교육청, 내달 8일까지 모집

‘나도 한번 전남으로 농촌유학 가볼까?’

전남도교육청이 2학기에 전남으로 농촌유학 올 학생을 이달 30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모집한다. ‘전남농산어촌유학’ 홈페이지에 접속해 농촌유학 운영 학교와 농가 정보를 확인하고 재학 중인 학교에 신청서를 내면 된다. 농촌유학 운영 학교에 전화를 걸어 상담하거나 아이와 미리 직접 방문해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다.

농촌유학을 신청하면 기존 학교에서 전출해 전남의 60명 이하 소규모 학교로 ‘전학’ 가는 것으로 처리된다. 6개월 단위로 신청이 가능하고 1회 더 연장할 수 있다. 물론 그 이후에도 희망할 경우 해당 학교에 남을 수 있다. 전남도교육청이 지원하는 학기당 유학비는 30만 원이고,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지역에서 농촌유학 가는 학생을 위해 추가 지원하는 학기당 유학비(30만 원)는 1년까지 지급된다. 다른 지역 교육청은 별도의 농촌유학 학비 추가 지원이 없다.

거주 유형은 △홈스테이형 △지역센터형 △가족체류형이 있다. 홈스테이형과 지역센터형은 초4∼중2(형제자매가 갈 경우 초1부터도 가능), 가족체류형은 초1∼중2 재학생이 신청할 수 있다. 1학기에는 총 82명이 참가했고, 이 중 55명이 2학기 연장을 신청했다. 서울시교육청은 30일 오후 3시에 교육청 유튜브를 통해 농촌유학 학부모 설명회를 개최한다. 전남도교육청은 2학기에 서울과 다른 지역까지 합쳐 200명 정도로 농촌유학 규모를 늘릴 예정이다.

화순=최예나 기자 yena@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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