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美협력 아프간인 보복 우려”… 美철군 앞두고 보호 비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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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비자 신청자 1만8000명 달해… AFP “美이주까지 최소 2년 걸려”
英은 협력자 전원 조건 없이 수용… 美, 비자 간소화 방안 발의된 상태
“일단 대피시킨 뒤 이주” 대안으로

미국이 올해 9월 11일까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마무리하기로 한 가운데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에 맞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에 협력했던 아프간 현지인들의 신변 안전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미군이 완전히 물러난 뒤 탈레반이 권력을 잡으면 미군에 협력했던 현지인들을 색출해 보복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영국 BBC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자국군을 도왔던 아프간 통역사 등 현지인들이 더 많이 영국에 정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 영국 정착 허가를 받은 1300명에 더해 최소 3000명을 추가로 허가한다.

그동안 영국은 현지인이 조력을 제공한 기간과 역할을 엄격히 따져 순위를 매긴 뒤 정착을 허가해 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 철군 방침을 발표한 뒤 탈레반의 공세가 거세지며 현지인 조력자들의 신변에 대한 위협도 커졌다. 이 때문에 영국은 이들의 활동 기간이나 역할의 중요성 등을 따지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기로 방침을 바꿨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탈레반의 보복으로부터 이들을 지키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고 말했다.

영국은 2014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군이 아프간 철군을 추진하자 영국군도 그해 말까지 철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영국군을 도왔던 아프간 통역사 200명 이상이 영국에 망명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진 건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망명 신청이 거부된 채 탈레반의 보복 위협에 시달렸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비자를 신청하는 아프간 조력자들도 늘고 있다. BBC는 미국 특별이민비자 제도(SIV)에 따라 비자를 신청한 아프간인이 1만8000명에 이른다고 지난달 31일 전했다. 미군이 탈레반,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와 싸우는 데 도움을 준 이들과 그의 가족들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AFP는 미국이 비자를 발급하고 이들을 미국으로 이주시키기까지는 2년 넘게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주간 타임지는 1만8000명 이상의 아프간인이 비자 발급을 기다리고 있고 이들의 가족 수는 평균 4명이라고 전했다. 원칙적으로 9개월 안에 비자가 발급돼야 하지만 대부분은 적어도 4년 이상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타임지 등 외신에 따르면 올 1월 미군 통역을 담당한 아프간 통역사가 열 살짜리 아들이 보는 앞에서 탈레반에 살해당했다. 그는 미국의 비자 발급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압둘’이라 불리는 다른 통역사는 자신의 동료 12명이 탈레반에 납치,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미국 비자를 신청했지만 거부됐고 현재 탈레반에 포로로 잡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간을 공격하면서 내건 작전명은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였다. 20년이 지난 현재 미군이 철수를 서두르면서 아프간의 안전과 자유는 다시 위태로운 상황에 몰렸다.

타임지는 “통역사 없이는 미군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며 “미국의 적들은 그들을 사냥하고 그들의 가족도 죽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미 의회에는 이들의 비자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승인 대상을 늘리는 법안들이 발의된 상태다. 비자 발급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보호가 필요한 아프간인들을 괌을 비롯해 탈레반의 위협이 닿지 않는 곳으로 우선 대피시킨 뒤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탈레반#아프가니스탄 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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