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만에야 멈춘 ‘피의 보복’…이-팔, 갈등 불씨 안은 휴전[글로벌 포커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입력 2021-05-22 03:00수정 2021-05-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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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휴전 합의
‘피를 부른’ 이슬람 성지 난입
또 다른 화약고 ‘유대인 정착촌’
휴전 환호하는 팔 주민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휴전에 합의한 20일(현지 시간) 가자지구 주민들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10일부터 시작된 양측의 충돌로 가자지구에서만 243명이 숨졌다. 이스라엘 사망자 12명까지 포함하면 합계 사망자는 255명에 달한다. 단기간에 희생자가 대폭 늘어나자 양측이 일단 갈등을 봉합하기로 했지만 분쟁의 원인인 동예루살렘 내 종교 갈등, 유대인 정착촌 건설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불완전한 합의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가자=AP 뉴시스
20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휴전에 합의했지만 수천 년간 지속된 양측의 영토 및 종교 갈등이 워낙 심각하고 이번 충돌의 원인인 동예루살렘 종교 갈등, 유대인 정착촌 갈등 등에 진전이 없어 분쟁 재발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측은 휴전 발표 성명에서도 모두 “우리가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급한 불만 껐을 뿐 갈등의 뇌관은 고스란히 남았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NYT), 가디언 등은 양측 대립을 ‘잔디 깎기(Mowing the Grass)’에 비유했다. 잔디가 자랄 때마다 깎아야 하듯 하마스의 공격력이 강화될수록 이스라엘의 보복 수위 또한 높아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나온다는 뜻이다. 이번 충돌에 따른 양측 합계 사망자 255명의 26%(66명)가 팔레스타인 어린이란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중동 전문가들은 지지 기반 강화를 위해 강경책만 고수하는 양측 집권세력의 기조를 감안할 때 본질적인 갈등 해소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BC 13세기부터 시작된 ‘피의 역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역사는 기원전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집트 압제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인은 모세의 인도하에 이집트에서 탈출해 현 팔레스타인 지역인 가나안에 당도했다. 비슷한 시기 지중해를 떠돌던 팔레스타인인 또한 이곳에 정착했다. 이후 이스라엘 왕국 멸망, 로마제국 지배 등으로 유대인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자 팔레스타인인이 2000년 넘게 거주했다.

본격적인 비극이 시작된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다.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오스만튀르크를 꺾으려던 영국은 유대계 자본, 오스만을 향한 아랍계의 봉기가 모두 필요했다. 이에 양측 모두에 “팔레스타인에 독립 국가를 건설하도록 해 주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해 분쟁의 씨앗을 잉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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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8년 자금력에서 압도적이었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먼저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팔레스타인인은 졸지에 2000년간 살던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주변 아랍국과 벌인 네 차례의 중동전쟁에서도 모두 승리했다.

1993년 양측 유화파인 이츠하크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1922∼1995)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1929∼2004)이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평화협정을 맺었다. 잠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지만 라빈 총리는 2년 후 협정에 반발한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됐다. 내부 반발, 부패 의혹 등에 연루된 아라파트 의장 또한 숨져 유화파 입지가 대폭 좁아졌다.

아라파트 사망 3년 후인 2007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PLO의 후신 파타를 몰아내고 가자지구를 장악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생필품을 제외한 물자와 인력의 이동을 제한하는 유례없는 봉쇄로 맞섰다. 이스라엘은 서울 면적의 약 60%(365km²)인 가자지구 곳곳에 8m의 장벽을 세워 이곳을 ‘세계 최대의 창살 없는 감옥’으로 만들었다.

2014년 7월 유대인 소년 3명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납치된 후 살해됐다. 분노한 일부 극우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소년 1명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군과 하마스 역시 ‘50일 전쟁’을 벌였다. 당시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로 진입해 2143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숨졌다. 대부분 민간인과 어린이였다.

○ 라마단 첫날 무슬림 성지 탄압해 충돌 격화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동예루살렘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3대 종교의 성지(聖地)가 모두 있어 늘 ‘분쟁의 화약고’로 꼽힌다. 이번 충돌의 직접적 원인 역시 지난달 13일 시작된 종교 갈등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은 무슬림이 신성시하는 금식 기간 라마단의 첫날이다. 이스라엘에는 한국의 현충일과 유사한 ‘전몰장병 추모의 날’로 양측 모두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역대 이스라엘 대통령은 ‘전몰장병 추모의 날’에 늘 동예루살렘 내 유대계 성지 ‘통곡의 벽’에서 연설을 했다. 벽 바로 아래에 무슬림 성지 알아끄사 모스크와 ‘바위의 돔’이 있다. 선지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바위의 돔’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메디나에 이은 이슬람 3대 성지다.

이스라엘은 알아끄사 내 기도 소리 때문에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의 연설이 방해받을까 우려했다. 연설 때만이라도 기도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사원 측은 거절했다. 결국 경찰이 사원에 진입해 기도를 드리던 무슬림을 모두 몰아내고 마이크 선을 자르자 무슬림의 분노가 커졌다.

이후 알아끄사 내에서는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위가 계속됐다. 이스라엘 또한 이달 7일 최루탄, 섬광탄 등을 쏘며 시위대를 강제 진압했다. 3일 후 하마스가 로켓포로 공격하고 이스라엘 또한 보복 공습으로 맞서 이번 충돌이 발생했다.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이슬람문화연구소장)는 “팔레스타인은 라마단 기간 중 알아끄사에 이스라엘 경찰이 진입했다는 것을 크나큰 모욕이자 불문율 파괴로 받아들인다. 하마스가 로켓포 공격을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진단했다.

○ 셰이크자라 유대인 정착촌 논란
인구 약 950만 명의 이스라엘에는 20%의 아랍계 주민이 있다. 이스라엘은 건국 후 아랍계 밀집지역에 공격적으로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며 아랍계 주민의 생존권을 박탈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국제사회가 유대인 정착촌 건설 문제를 비판해도 이스라엘은 내정 간섭이라며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번 충돌의 또 다른 원인은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셰이크자라’ 지역 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 논란이다. 동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셰이크자라 역시 아랍계 주민이 많았지만 정착촌 때문에 속속 강제 퇴거를 당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50만 명 인구의 40%가 유대계인 동예루살렘에 더 많은 유대인을 이주시켜 아랍계 인구를 추월하겠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셰이크자라 유대인 정착촌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양측 분쟁이 벌어질 때마다 법원은 ‘정착촌 건설로 밀려나는 팔레스타인 가구를 추방하는 것이 정당하다’며 정부 편을 들었다. 경찰 또한 정착촌 건설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거세게 탄압해 무슬림 분노가 격화됐다. 알아끄사 내에서 이스라엘의 종교 탄압을 규탄하던 무슬림 시위대가 늘 셰이크자라 문제 또한 같이 언급한 이유다.

이스라엘 측은 셰이크자라 내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퇴거 명령을 아직 철회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일 하마스 고위관리 오사마 함단이 “‘바위의 돔’과 셰이크자라 문제에 대한 이스라엘의 확약이 있었다”며 이 문제에 대한 이스라엘의 양보를 얻어냈다는 뜻을 밝혔다.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즉각 “완전히 거짓”이라고 부인했다.

법원은 다음 달 재판에서 셰이크자라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에 관한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법원은 팔레스타인인의 반이스라엘 시위가 격화하자 이달 9일로 예정됐던 심리를 연기했다.

○ ‘외부의 적’ 이용해 장기집권 꾀하는 양측 지도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72)와 하마스 모두 ‘외부의 적’을 이용해 장기집권을 꾀한다는 점도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 전체 120석인 이스라엘 의회에는 10여 개 정당이 난립해 연정이 아니면 집권이 어렵고 총선도 잦다. 최근 2년 동안에만 무려 5번의 총선이 치러졌다.

강경 우파 리쿠드당을 이끌고 있는 네타냐후는 1996년 6월∼1999년 7월, 2009년 3월∼현재까지 15년 넘게 집권 중인 최장수 총리다. 지난해 초 총선에서 과반을 획득하지 못한 그는 연정을 통해 간신히 재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예산안 등을 둘러싼 연정 내 분열로 실각 위기에 몰렸다. 그는 이미 2019년 11월 부패 혐의 등으로 현직 총리 최초로 기소됐고 아직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총리직에서 물러나면 면책 특권이 없어져 곧바로 감옥으로 갈 수 있다.

네타냐후는 이번 사태로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방에 과시했다. 특히 그가 두 번째 집권 직후인 2011년 미국과 함께 개발한 단거리 미사일 방어체계 ‘아이언돔’의 위력이 입증됐다는 점 또한 핵심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의 지지를 강화할 요소다. 우선 이스라엘 사망자가 12명으로 팔레스타인(243명)보다 훨씬 적었다. 또 지하 땅굴 등 하마스의 군사 시설을 상당 부분 폭격했고, 하마스 간부 수십 명도 제거했다.

가지지구 경제난, 대규모 인명 피해 등으로 여론 악화에 직면했던 하마스 역시 반전의 계기를 잡았다. 하마스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무슬림형제단’ 인사들이 1987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결성했다. 2006년 초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파타를 누르고 집권당이 됐다. 이어 2007년 6월 파타와 벌인 내전에서 승리해 가자지구 통치권을 획득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후 이스라엘의 봉쇄 또한 강화되면서 205만 명인 가자 주민의 불만 또한 높아졌다. 2018년 세계은행 기준으로 주민 54%가 빈곤층일 정도로 경제난이 극심하다. 2014년 ‘50일 전쟁’ 때 민간인이 대거 희생된 것도 하마스에 대한 불만을 키웠다. 이로 인해 올해 중 치러질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던 처지였다. 하지만 ‘이스라엘과의 군사력 격차를 인정하고 유화 노선을 걷자’는 파타와 달리 이번 사태에서도 내내 강경 투쟁을 고수해 ‘팔레스타인 수호자’ 이미지를 강화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충돌로 양측의 경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점이 역설적으로 추가 분쟁의 위험을 낮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언돔’의 요격 비용이 만만치 않다. BBC 등에 따르면 아이언돔 요격 미사일 발사에는 1발당 10만 달러(약 1억1500만 원)가 든다.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포는 1발당 불과 300달러 정도다. 이번 교전 기간 중 하마스가 약 4000발의 로켓포를 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4억 달러(약 4600억 원)를 썼다는 의미다. 이번 사태로 최대도시 텔아비브 인근 공장과 공항이 폐쇄된 것 등도 상당한 피해를 안길 것으로 보인다.

가자지구의 피해는 더 심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병원 6곳을 포함한 건물 450채, 약 1만7000채의 주택이 손상됐고 7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발생했다. 충돌 전에는 가자지구에서 하루 12시간의 전기 사용이 가능했지만 이제 3∼4시간으로 줄었다. 하마스 측은 이스라엘 공습으로 가자지구 산업 및 에너지 부문의 손해가 각각 4000만 달러, 2200만 달러 발생했다고 밝혔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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