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 감독 “17년 만에 재개봉…타임머신 탄 듯”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9일 14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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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7시 한 곳에서 얼굴을 보기 힘든 이들이 CGV 용산아이파크몰 4관 앞에 모였다. 한국 영화 두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넘긴 ‘태극기 휘날리며’를 만들며 한국 영화 ‘천만 관객 시대’를 연 강제규 감독(59),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어 ‘곡성’ ‘버닝’ ‘기생충’ 등 숱한 히트작을 촬영한 홍경표 촬영감독,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강 감독의 대표작을 함께 한 이동준 음악감독이다. 세 사람이 한 날 한 시에 모인 건 17일 태극기 휘날리며의 재개봉에 맞춰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GV)가 있었기 때문. 100명 가까이 되는 관객들은 오후 11시가 넘어서까지 진행된 GV에서 열띤 질문을 이어갔다. 17년 만에 4K 초고화질(UHD·3840×2160) 해상도로 리마스터링 돼 극장에 걸린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 감독을 만났다.

19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태극기 휘날리며'의 관객과의 대화의 진행자 이재진 다자인소프트 공동대표와, 이동준 음악감독, 강제규 감독, 홍경표 촬영감독(왼쪽부터).
19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태극기 휘날리며'의 관객과의 대화의 진행자 이재진 다자인소프트 공동대표와, 이동준 음악감독, 강제규 감독, 홍경표 촬영감독(왼쪽부터).


“(영화를 보니)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았다. 17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한 순간에 없어진 느낌이랄까. 그게 영화의 힘인 것 같다. 17년 전 영화가 재개봉을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그걸 다시 보러 온 관객들이 있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CGV가 한국영화 재상영관 ‘시그니처K’를 개관하면서 첫 영화로 극장에 걸리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해 신작 개봉이 줄줄이 밀린데 대한 대책 중 하나다. 이달 17일 태극기 휘날리며를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CGV가 리마스터링 복원 작업을 거친 한국영화를 선보인다. 3월에는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시작’을 주제로 태극기 휘날리며와 ‘공동경비구역 JSA’가 선정됐다.

“코로나 19가 신작들의 발목을 붙들고 있지만 과거 영화들의 재개봉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19가 가져다 준 선물이다. 시간이 흘러 고전을 다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보고 싶다는 욕구가 누구나 있지 않나. 내가 극장에서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10년, 20년이 지나도 극장이란 공간에서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거다. TV나 스마트폰을 통해 예전 영화를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재개봉만큼이나 그의 차기작 ‘보스턴 1947’에 대한 영화 팬들의 관심도 크다. ‘마이웨이’(2011년)의 흥행 실패 후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과, 노년의 로맨스를 그린 ‘장수상회’로 숨고르기를 했던 그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제작비 190억 원의 대작이기 때문. 광복 2년 후인 1947년 열린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동양인 선수 최초로 우승을 한 서윤복 선수(임시완)와, 그를 지도한 손기정 선수(하정우)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지난해 개봉 예정이었던 보스턴 1947은 코로나 19로 인해 올해 말로 개봉이 연기됐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 세 편을 연달아 만들고 나니 대작영화에 대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마이웨이 후반작업 때 연출 제안이 들어온 큰 스케일의 영화들을 모두 거절했다. 야전에서 전투만 하던 내가 민우씨 오는 날과 장수상회를 만들면서 인생의 ‘쉼표’를 가졌다. 충전을 하고 나니 몸이 다시 근질근질해지면서 전투력이 살아났다. 보스턴 1947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장수상회 중간쯤에 있는 영화다. 각본 초안은 있었고, 내가 초안을 각색하고 연출을 담당했다.”

강 감독에게는 ‘마라톤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4~5년에 한 번씩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기 때문. 그는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의 간격을 두고 그의 첫 장편영화인 은행나무 침대를 시작으로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 장수상회를 선보였고 올해 보스턴 1947 출격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9월부터는 1987년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첩보 스릴러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의 내가 잘 살기 위한 답은 결국 역사에 있더라. 과거를 제대로 알고 이해함으로써 오늘의 내가 존재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역사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고, 이야기의 영감도 많이 얻는다. 지금 준비하는 신작도 1987년 발생한 사건이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첩보 스릴러물이다. 너무 민감한 소재라 어떻게 영화로 풀지 한참을 고민하면서 아이템으로 품고만 있다가 오랜 고민 끝에 해답을 찾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어렵다. 하하.”

태극기 휘날리며의 재개봉으로 ‘영화라는 장르의 힘’을 새삼 느꼈다는 강 감독은 코로나 19 이후에도 영화와 극장은 건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2월 중순에 개봉해 2월 말까지 44억 위안(약 7600억 원)을 벌어들인 중국 영화 ‘안녕 이환영’의 사례를 들었다. 이 영화는 역대 중국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다시 쓸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19에 접어든 국가들에서 코로나 19 이전보다 더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란 단순히 콘텐츠만이 아닌, 예매를 하고, 어두컴컴한 공간에 들어가 2배속도, 일시정지도 하지 못하고 콘텐츠를 감상하는 행위를 모두 합친, 복합적 의미다. 인간이 만든 예술의 장르 중 영화만이 갖는 아름다움의 힘이다. 영화의 힘을 믿기에 보스턴 1947도 극장에 걸 것이다. 영화는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지 않나.”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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