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점]들끓는 LH 해체론, 정치가 만든 공공만능의 역풍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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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직원 투기의혹 거센 후폭풍

이은우 논설위원
이은우 논설위원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에 들끓은 여론이 LH 해체론으로 치닫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은 15일 “LH는 해체 수준의 대수술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LH 해체를 거론하며 “LH 신뢰가 회복 불능 상태”라고 못 박았다.

정부 내에서는 LH 기능을 줄이고 토지와 주택으로 분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국토교통부 산하 주택청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간판을 바꿔달거나 단순히 토지와 주택을 분리해서는 달라질 게 없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LH 해체론이 불거지면서 기획재정부가 2015년 내놓은 ‘LH 기능 조정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LH의 개발과 건설 기능을 줄이고 도시재생과 주거복지 역할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다만, LH 역할을 줄이는 과정에서 주택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민간을 묶어두고 공공에 의존한 정책이 LH 비대화를 불렀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논리가 만든 공룡 LH


이낙연 위원장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통합한 이후 너무 많은 정보와 권한이 집중됐다”고 밝혔다. 실제 LH는 신도시 공공분양 임대주택 희망상가 부동산금융 경제자유구역 해외개발 등 굵직한 업무만 40여 가지다.

하지만 통합 필요성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 제기됐다. 김대중 정부가 2002년 ‘공기업 민영화 및 경영혁신계획’으로 통합을 결정한 바 있고, 이명박 정부가 실행했다.

당시 주공 직원 300여 명이 토지 개발 업무를 맡을 정도로 두 공사의 업무 중복이 많았다. 주공 적자도 문제였다. 주공은 임대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다 보니 적자가 불어난 반면, 토공은 싼값에 땅을 수용해 비싸게 팔면서 ‘땅장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작 LH 비대화를 초래한 것은 정치 논리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대규모 개발 사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등을 추진하면서 실무를 LH에 맡겼다. 이명박 정부는 보금자리주택을, 박근혜 정부는 행복주택을 간판 사업으로 내걸었고 이런 업무는 모두 LH 몫이었다.

새 정책을 추진하면서 특별법들을 만들었고 택지개발촉진법을 개정했다. 이런 입법은 LH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대통령 공약 하나가 늘 때 LH 업무는 두 개가 늘어난다’는 말도 나왔다.

공공만능이 만든 LH 역할 확대


지난 20년 동안 LH 역할 변화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었다. 대규모 개발에서 도심 공급과 맞춤형 사업으로, 공공 주도에서 민간 이양으로 진행됐다. 노무현 정부 때 새로운 도시를 조성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도심에 보금자리주택을 지었다. 박근혜 정부는 규모를 더 줄여 역세권이나 유휴부지에 신혼부부 청년 등을 위한 소규모 행복주택을 공급했다.

주택이 웬만큼 공급돼 과거 200만 채 건설 같은 대규모 사업을 벌일 필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 두 공사 통합 논리 중 하나가 주택보급률이 90%를 넘었다는 통계였다. 2009년 두 공사 통합 당시에는 민간 역할을 늘리고 정부는 공공임대나 도시재생에 주력한다는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민간 공급이 줄고 집값이 폭등하자 이런 흐름이 바뀌었다. 연간 50만 채 수준이던 아파트 인허가 건수가 현 정부 들어 40만 채를 밑돌았다. 집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LH 중심의 대규모 공공주도 공급에 나섰다. 그 결과 신도시 개발은 물론이고 도심 재개발·재건축까지 공급 역할이 LH로 집중됐다.

민간 활성화-LH 역할, 동전 양면


LH 역할을 줄인다면 비슷한 기능을 가진 지방 도시공사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개발 계획부터 현장 운영까지 LH 역량이 지방 공기업에 비해 월등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앙집중식 토지주택정책을 펼쳐온 탓에 지방 공기업의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1981년 주택과 토지 기관을 합쳐 주택·도시정비공단을 만들었다. 이 기관은 도시기반정비공단으로, 다시 도시재생기구로 바뀌었다. 대규모 택지와 주택단지를 짓는 역할에서 도시재생과 임대주택 전문으로 탈바꿈했다.

2015년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LH 기능 조정 방안도 일본의 흐름과 비슷하다. 택지 개발은 축소 또는 폐지하고 주거복지와 도시재생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거복지는 저소득층 임대료를 지원하는 주택바우처 제도, 공공 임대, 전세 지원 등이다. 도시재생은 재건축 같은 민간 영역을 제외한 낙후 지역 개발 등을 뜻한다.

LH 고위 관계자는 “너무 무분별하게 택지 개발을 많이 했다. 진작 주거복지와 도시재생에 집중해야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LH 역할 축소 과정에서 주택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민간 공급 확대가 필요한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민간 신축 공급과 함께 기존 시장의 매물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LH 역할 축소나 조정은 민간 공급 확대와 동시에 진행돼야 할 사안이다. 규제 완화나 세제 개편이 필요한 대목인데 공공주도를 고집하는 현 정부가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LH 논란 불거지며 공급대책 차질 우려 커져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해체론이 불거지면서 2·4공급대책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에 이어 16일에도 2·4공급대책 강행을 주문했지만 공공개발 후보지에서 주민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광명·시흥 신도시 지정을 취소하라는 여론도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를 발표할 예정이지만 사업을 주도할 LH에 대한 반감은 커지고 있다. 주민 동의율이 70%를 넘은 서울 한남1구역에서는 일부 주민이 공공재개발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마포와 동대문 등에서는 공공재개발을 취소해 달라는 집단민원이 구청에 접수되거나 민간 재개발을 하자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LH 주도의 공공 재개발·재건축에 대해서는 2·4공급대책 발표 때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LH 직원들이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시한부 장관이 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리더십 상실과 산하 기관 LH 해체론이 겹친 상황이다.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주민 설득에 나설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많다.

4월에는 2차 신규 공공택지 발표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지방 대도시 인근 지역까지 신도시 후보지마다 투기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예정대로 신규 택지를 발표하더라도 주민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주택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폭등한 상황에서 공급대책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신도시 개발은 최초 발표부터 입주 때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고 다음 정권에서 취소하기도 쉽지 않다. 이미 지구 지정이 끝난 신도시들은 토지 보상 등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민 동의가 필요한 공공 재개발·재건축은 일부 지연될 수 있지만 신도시 주택 공급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


#한국토지주택공사#해체론#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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