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서 메달 따지 못하면 실패하는 줄 알았는데…더 큰 꿈 품게 되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6일 15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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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국가대표 탁구 장우진 선수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탁구 장우진 선수
“마음 관리 못하면 두 번 지는 거다.”

2018년 3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카타르오픈에 참가한 장우진(26·미래에셋대우)의 머릿속엔 김택수 미래에셋대우탁구단 감독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세계랭킹 8위 마티아스 팔크(30·스웨덴)에게 10-9로 앞서고 있던 장우진은 운좋게 찾아온 찬스볼을 상대 빈 공간 대신 정면으로 보내버렸다. 마티아프 라켓에 맞은 공은 장우진의 빈 테이블을 튕기고 떨어졌다. 조급한 마음에 벌어진 실수였다. 이날 장우진은 경기에서도, 정신력 싸움에서도 철저히 패배했다.

●패배 속에서 승리의 답을 찾다



대한탁구협회가 도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대표팀 명단을 21일 발표했다. 장우진은 세계랭킹 11위로 남녀 통틀어 국내에서 가장 높은 순위로 명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10경기를 하면 4~5경기는 항상 이기다가 졌다”며 “마티아스에게 역전패를 당하고 나니 ‘난 올림픽에 출전 못할 놈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넘치는 감정과 에너지를 주체못했던 때가 많았다. 2015년에는 15살 차이가 나는 대선배 주세혁과의 경기 중 공을 깨뜨리고 라켓을 집어던져 출전중지 6개월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3세트를 전부 따낸 그가 4세트에서도 8-4로 앞서가다 갑자기 역전패를 당하면서 분을 참지 못했던 것. 국제대회에서 승리한 뒤 탁구대에 올라 세리머니를 했다가 김 감독에게 주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이 찾아왔다. 마티아스에 당한 강렬한 역전패의 충격은 도리어 경기에 대한 그의 부담을 내려놓게 했다. ‘그냥 즐기자’하는 초연한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페이스를 조절하는 법도 터득했다. 그해 7월 국제대회 코리아오픈에서 북한의 차효심과 혼합복식 우승, 임종훈과 남자 복식 우승, 남자 단식 우승으로 사상 첫 3관왕을 거머쥐었다. 두 달 뒤 열린 실업탁구리그에서는 국내대회로는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운명처럼 찾아온 탁구




사실 그는 탁구에 별 흥미가 없던 아이였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탁구를 싫어했다. 운동을 좋아하긴 했지만 축구나 족구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탁구부 선수였던 4살 차이 형을 따라 8살부터 라켓을 잡았지만 탁구보다는 탁구부에서 주는 빵과 우유에 관심이 더 많았다. 연습이 따분해 “신발장에 신발 가지고 오겠다”며 몰래 도망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탁구부에서 얌전히 훈련을 받는 날은 1주일 중 하루이틀에 불과했다.

집안에 탁구에 대한 조언을 줄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복싱, 육상 등 운동에 관심을 갖고 초중고 시절 잠시 선수 생활도 했지만, 프로 선수 데뷔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의 부모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영업을 하며 지내왔다. 중학생 때 라켓을 내려놓은 형은 현재 고향인 강원 속초에 있는 공기업의 신입 직원이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의 떡잎을 알아봤다. 당시 속초 청대초 교장과 탁구부 코치는 집까지 찾아가 “장우진을 탁구 선수 시키자”며 부모를 설득했다. 성수고 1학년 시절에는 탁구 라켓을 후원해주던 업체 ‘엑시옴’에서 1년 간 독일 유학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탁구 강국인 독일에서 성장할 수 있게 투자한 것이다.

● 올림픽보다 큰 꿈을 품다


원래 장우진의 꿈은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다. 탁구를 시작한 이유는 가장 큰 탁구대회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서라고 생각했고, 메달을 따지 못하면 인생이 실패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는 최근 들어 더 큰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올림픽과 상관없이 세계탁구(WTT)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열심히 참가해 한국을 많이 알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한국 탁구의 세계화와 국내 탁구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 수단이 꼭 올림픽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은퇴 뒤 탁구 지도자가 돼 후배들에게 정밀한 탁구 이론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는 3년 전 여자 국가대표팀에 코치로 파견 온 한 중국인에게 과학적인 이론 탁구를 배웠다. 그에 따르면 일명 ‘치키타’로 불리는 백드라이브를 할 때는 공의 6~7시 부위를 노려 쳐야 하고, 칠 때는 6시에 있는 엄지를 12시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최대한 짧게 돌려쳐야 회전과 스피드를 한꺼번에 챙길 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드라이브를 할 때 큰 틀에서 ‘무릎을 낮추고 허리를 돌려서 공을 칠 때 손을 앞으로 내보내라’고 알려준다”며 “하지만 중국에서는 ‘무릎을 굽힐 땐 얼마만큼 굽혀야 하는지’, ‘공을 때리기 전에 손목의 위치는 어때야 하는지’, ‘공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쳐야 공이 길게 떨어지는지’ 이론적으로 하나하나 분석해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탁구에 대한 이론과 전략을 깊이 공부할 계획이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탁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우승은 반드시 세계랭킹 1위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재능이 없는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탁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안양=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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