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투쟁했던 운동가 백기완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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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농민-통일-민주화 운동 매진
투옥중 ‘임을 위한 행진곡’ 원작 시 써
1987-1992년 두 차례 대선 출마도
정치권 “영원히 기억될 것” 애도

통일·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통일·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폐렴으로 1년 넘게 투병한 끝에 15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1946년 월남한 고인은 1964년 함석헌, 계훈제, 변영태 등 재야운동가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 운동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백만인 서명 운동을 주도하다가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인 1979년 ‘YWCA 위장결혼 사건’을 주도해 다시 투옥됐고, 당시 써내려간 15장의 시(詩)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원작이 됐다. 1987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고, 이후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일하며 통일 운동에 매진했다.

고인은 생전에 “나에게 보낼 조화가 있으면 소외된 사람들, 투쟁하는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했고, 그 뜻에 따라 유족들은 청와대의 조화 등을 모두 사양했다. 장례의 명칭 역시 고인이 쓴 마지막 글귀인 ‘노나메기’로 정해졌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고인의 별세에 정치권은 애도를 표했다. 김제남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빈소를 찾아 조문했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백기완 선생의 치열했던 삶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등한 세상 또한 고인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했고, 고인과 한일협정 반대 운동을 함께했던 국민의힘 이재오 상임고문도 빈소를 찾았다. 정의당, 열린민주당 의원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 씨와 딸 원담 성공회대 교수, 미담 현담 씨와 아들 일 울산과학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고,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성남시 모란공원이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운동가#백기완#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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