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사촌들과 의료봉사 함께하고파” ‘이산가족 3세대’ 장기려 손자 장여구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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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3세대’ 장기려 손자 장여구 교수
“설에 가족 못만나는 아쉬움도 큰데 70년 이산가족의 슬픔 오죽하겠나”
조부 장기려, 가족 재회 못하고 별세… 부친은 이산상봉때 노모와 만나

장여구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가 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2000년 8월 1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아버지 장가용 박사와 할머니 김봉숙 씨의 재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장여구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가 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2000년 8월 1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아버지 장가용 박사와 할머니 김봉숙 씨의 재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저도 북의 가족들을 직접 보지 못했어요. 만약 제가 만나지 못한다면 제 아들 세대에는 북에 어떤 가족이 살았는지 전혀 모른 채 살아갈 겁니다. 가족의 연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이산가족 상봉이 꼭 필요하다는 마음입니다.”

‘이산가족 3세대’인 장여구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57)에게 이산가족 상봉은 이루지 못한 꿈이다. 6·25전쟁 때 북한의 할머니와 헤어진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한 할아버지나, 2000년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딱 한 번 자신의 어머니를 다시 만난 아버지처럼 애절한 그리움은 아니지만 북한의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매한가지다.

장 교수는 설 연휴를 앞두고 동아일보와 만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명절에 가족을 못 보는 아쉬움도 이렇게 큰데 70년 가까이 떨어져 지낸 이산가족들의 슬픔은 오죽하겠느냐”며 “화상으로조차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의 심정을 많은 사람이 공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 교수의 할아버지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고 장기려 박사(1911∼1995·사진)다. 평양 김일성대 의대 교수였던 장 박사는 6·25전쟁 도중 아내, 5남매와 생이별한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했다. 피란 온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 진료했고 이후 평생 봉사의 길을 걸었다.

장 박사는 아내와 자녀들을 잊지 못했지만 1985년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에 “혼자 특혜를 누릴 수 없다”며 마다했다. 1991년 미국의 친지를 통해 가족이 북한에 살아 있다는 소식과 함께 부인의 사진, 편지를 받고 재회를 꿈꿨지만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 박사가 못 이룬 꿈은 아들인 고 장가용 박사(1935∼2008)를 통해 이뤄졌다. 장 박사가 2000년 8월 평양에서 열린 1차 이산가족 상봉에 의료지원단장으로 동행하면서 북한에 남은 90세 노모, 형제들과 3시간 남짓한 만남이 성사된 것. 상봉 1년 뒤인 2001년 장 박사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남은 인생 동안 그간 못한 효도를 하며 같이 사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망”이라며 사모곡을 공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재회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장 박사의 어머니 김봉숙 씨는 2004년 사망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봉사정신과 북한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손자인 장 교수가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장 교수는 할아버지의 봉사 정신을 계승해 만든 블루크로스(청십자)의료봉사단을 이끌며 의료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장 교수는 “북한에 있는 할아버지의 손자 17명 중 11명이 의사라고 들었다”며 “북의 사촌들과 의료봉사를 함께하며 남북 교류의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산가족 상봉은 2018년 8월 21차 상봉을 끝으로 2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코로나19로 화상 상봉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북한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8일 이산가족 단체장들과 만나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전국 13곳에서 하루 40가족씩 화상 상봉이 가능하다”고 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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