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닦아주는 詩를 쓰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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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7년 만에 산문집 ‘외로워도…’ 출간
대표작 60편 담아 작품에 얽힌 일화 시와 함께 풀어내
“우린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 그걸 이해할 때 외로움과 고통 견뎌낼 수 있어”

정호승 시인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롭고 슬픈 존재”라며 “한 편의 시를 통해 누군가의 삶에 힘과 위안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큰 기쁨이자 위안”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정호승 시인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롭고 슬픈 존재”라며 “한 편의 시를 통해 누군가의 삶에 힘과 위안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큰 기쁨이자 위안”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올해 시력(詩曆) 48년이자 칠순을 맞은 정호승 시인이 이를 기념해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펴냈다. ‘국민 애송시’로 사랑받은 ‘수선화에게’를 비롯해 시대의 어둠을 밝힌 ‘서울의 예수’, 인간의 그늘을 들여다본 ‘내가 사랑하는 사람’ 등 대표작 60편을 쓰게 된 계기나 배경에 관한 일화를 해당 시와 함께 엮었다.》

10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교육회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 시인은 “시는 시대로 묶고 그 시를 쓰게 된 이야기는 산문집으로 따로 내곤 했는데 어느 시점에 이르자 ‘시와 산문은 문학이란 이름 아래 하나의 영혼과 몸을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요즘 시가 너무 어렵고 독자와 동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시를 쓴 계기를 한 상에 차리면 시를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세기 가까이 써온 시 중에서 시작(詩作) 뒤편에 풀어낼 서사가 있는 작품을 선정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내드릴 때 겪었던 무력감, 잡지사 기자 시절 만난 탄광마을 광원에게 배웠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절친했던 동화작가 정채봉(1946∼2001)에 대한 그리움 등 일상의 사건과 성찰을 시로 빚어낸 과정이 진솔하게 기록돼 있다.

그는 “외로움이 우리 사회에서 여러 문제를 낳고 있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며 “그걸 이해할 때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도 견뎌내는 힘이 생김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인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시 두 편을 꼽았다. 먼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구절로 각인된 ‘수선화에게’다. 많이 사랑받은 만큼 애착이 특별하다.

40대 후반 “외로워 죽겠다”는 친구의 느닷없는 한탄에 지은 시다. 그는 “많은 독자가 이 시를 자신의 시로 생각하고 사랑한 것은 연약한 꽃대 위에 핀 영롱한 꽃빛이 모든 인간이 가진 외로움의 색채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사셨던 어머니 묘비명을 ‘예수님을 사랑한 어머니’라고 썼는데 만약 나도 묘비명을 갖게 된다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을 쓰면 어떨까 생각해봤다”고 했다.

시인이 스스로 가장 많은 위로를 받는 시는 ‘산산조각’이다. 네팔 룸비니에서 사온 작은 흙 부처상을 책상에 올려둔 뒤 ‘깨지면 어떡하나’ 염려하다 쓰게 된 시다.

시인은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산산조각 나면 어쩌나, 내 인생이 그렇게 부서지면 어쩌나 늘 걱정했는데 시적 상상 속 부처가 ‘산산조각 나면 산산조각을 얻는 것이다’고 알려주시더라”며 “오늘이 아니라 오지 않은 내일과 미래를 걱정하며 계속 살아가던 때 ‘산산조각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면 된다’는 것은 삶의 큰 힘과 위안이 돼줬다”고 말했다.

시인은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긍정적 의미에서 정리할 것은 미리 정리해놓고 싶다”며 “남은 생애, 다른 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시를 최대한 많이 쓰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정호승#시인#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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