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핵 경쟁 속에 낀 한국[글로벌 이슈/황인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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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둥펑-41. 사거리가 1만4000km에 달해 중국에서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하며 핵탄두를 10개까지 탑재할 수 있다. 사진 출처 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중국의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둥펑-41. 사거리가 1만4000km에 달해 중국에서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하며 핵탄두를 10개까지 탑재할 수 있다. 사진 출처 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황인찬 국제부 차장
황인찬 국제부 차장
“세계가 부러워할 최강 무기가 있다. (다른 나라가)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을 우리는 갖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미네소타 유세에서 대뜸 신형 무기 얘기를 꺼냈다.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 밥 우드워드가 저서 ‘격노’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신형 핵무기 시스템 얘기를 했다”고 밝힌 뒤였다. 이후 ‘대통령이 기밀을 노출했다’는 비판이 거셌지만 이번엔 아예 공개석상에서 재차 언급한 것이다.

다만 신형 무기가 뭔지에 대해서는 “말 안 하겠다”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러자 전문가 사이에선 새 무기가 러시아가 개발한 극초음속 미사일을 뛰어넘는 속도의 미사일이라거나 위력을 약화시켜 실제 사용 가능성을 높인 신형 저강도 핵탄두(W76-2)란 추정이 나왔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을 감안하면 수십 년간 미국이 비밀리에 연구 중인 신형 레이저 무기가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트럼프는 왜 신형 핵무기 얘기를 갑자기 꺼냈을까. 이는 최근 강해지고 있는 미국의 중국을 향한 핵무기 견제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 국방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핵탄두 200기를 갖고 있고 10년 뒤 2배로 늘어날 것이라며 중국을 압박했다. 펜타곤이 중국의 핵탄두 수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찰스 리처드 미 전략사령관은 “중국은 핵능력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또 중국이 과거 약속했던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 입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기색도 내비쳤다. 중국은 1964년 첫 핵실험 이후 이런 원칙을 밝히며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 뒤에서 핵 능력을 강화해 왔는데 이제 중국의 핵능력이 더 커지는 것을 미국이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셈이다.

이런 까닭에 미국은 러시아와의 핵군축 협상인 ‘뉴스타트’에 중국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 협정은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핵탄두를 1550기로 제한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내년에 협정 만료가 돼 연장을 논의하는데 이참에 중국도 끼라는 것이다. 미국의 군축담당 특사는 “중국이 큰 지위를 얻으려면 강한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 핵 증강에선 만리장성 같은 비밀이 더 없어야 한다”고도 했다.

60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에 비해 중국이 보유한 핵 규모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이런 까닭에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만큼 핵을 늘리거나, 반대로 미국과 러시아의 핵이 중국만큼 줄어들 때까지 중국이 핵군축 협상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중국 외교부는 “미국과 러시아가 핵군축에서 최우선 순위 책임을 갖고 있다”며 참여를 거부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국 내에서는 미국과 핵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편집장은 “중국이 핵탄두를 1000개까지 늘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둥펑-41’을 최소 100기 마련해야 한다”고 나섰다. 중국사회과학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행동에 대해 중국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문제는 이런 미중 간 군사적 경쟁이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미 국무부 군비통제 대통령 특사는 “중국은 핵무기로 무장한 깡패”라면서 “(중국의 위협 대응에) 한미가 적합하다고 보일 정도로 함께 일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에 당장 중국이 강하게 반대하는 중거리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가 본격 거론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렇게 미중 갈등은 경제 전쟁을 넘어 이제 실제적인 군사적 경쟁, 그중에서도 핵 경쟁으로 심화되는 상황이다. 북한의 핵 문제를 풀지도 못했는데 미중 간 군사적 경쟁이 심화되는 난국이 우리 앞에 그려지고 있다. 정부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기대고 있다”며 미중 모두에 손을 내미는 형국이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한국에 선택을 강요하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에 대화나 협력 제안을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 시급한 것은 치열해지는 미중의 패권 경쟁 속에 우리가 펴 나가야 할 안보 생존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황인찬 국제부 차장 hic@donga.com
#미국#중국#핵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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