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국가의 만행에 민주국가의 강점으로 대응하라[우아한 청년 발언대]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입력 2020-09-08 14:00수정 2020-09-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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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참혹한 상황을 그린 삽화.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세계의 모든 인권 지표들에서 북한은 최악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북한 정권은 일반 주민들의 참정권·자유권 등 기본적인 권리를 가혹하게 억압한다.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여성·장애인·아동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국가권력적 차원에서 차별을 공고화하고 있다.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15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가두고 갖은 방법으로 학대하는 중이다. 그 잔혹함에 비할 것은 나치의 아우슈비츠나 소련의 굴라그밖에 없을 것 같다.

독재국가인 북한의 엄혹한 폐쇄적 체제를 고려할 때, 북한 정권 스스로 인권을 개선하는 시나리오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다. 이 비극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면 끊임없는 폭력의 재생산으로 인권 유린이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북한 역시 나치나 소련처럼 사회적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조망 밖’에서의 협력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강력한 비판을 해왔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성명을 채택해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한편, 각종 인권단체들은 북한 정권의 행태에 대해서 고발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전 세계인들이 북한 내 인권에 대해 걱정하고 행동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지리적·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대한민국은 그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현재 우리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 국제·국내적 측면 모두에서 현명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 핵심적인 원인은, 민주주의 국가의 이념과 기능, 그리고 인권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17-18세기 시민혁명으로 출발한 민주주의는 각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을 발견한 데에서 출발했다고 할 것이다. 자유와 평등, 이것은 존엄성 및 기본권과 밀접히 관련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인권에 서있다고 표현할 수 있고, 근간(根幹)으로서의 인권을 수호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책무인 동시에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에 민주국가인 한국이 인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필수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존엄에 대한 건실한 의견을 국제적으로 내지 않았고, 국내 정부 기관들은 북한 인권에 대한 임무를 방기(放棄)했다. 이는 민주주의 이념과 인권문제의 불가분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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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북한 인권 대응,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한국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노력을 효과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뚜렷한 국가적 입장이 제대로 서있지 않다. 유엔은 2003년부터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찬성국의 숫자는 꾸준히 점증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북한 인권 문제 접근방식은 일관되지 않고 지그재그의 형태를 보였다. 인류 공영을 바탕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한반도 평화’의 기조를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대북정책 패키지(package)’의 일환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정권과의 관계에 따라, 그에 협조하거나 항의하는 ‘정치적 카드’의 수단으로 쓰여 왔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화해 기조를 바탕으로, 2003-2005년 노무현 정부는 북한인권결의안에 불참 또는 기권했다. 그러나 핵실험 직후인 2006년, 정부는 대북 제재의 일환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정부 말기 제2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의 유엔총회에서는 다시 기권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측에 인권결의안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는 회고가 나오기도 했다. 대북 압박 수위를 높였던 10년간의 보수정부 집권 후, 남북관계 개선을 주창하며 들어선 문재인 정부 역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결국 2019년, 한국은 11년 만에 인권결의안 제안국에 불참했다.

물론 북한 문제는 사회의 여러 측면들이 한데 얽혀 있다는 점에서 복잡다단하다. 북한 정권과의 교섭은 종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는 변동하는 정치적 문제와 분리되어 항상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사안이다. 사람의 존엄성은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인간 존중을 지향하는 민주적 이념을 외면했던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다른 정책수단을 통해서 해야 할 것이었다. 정부는 고통받는 이들을 담보로 북한 정권과 야합해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레그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이 2019년 7월 19일 제25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 개선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문제의 주무 정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는 집권세력의 성향에 따라 사안 판단에 눈치를 본다는 지적을 계속해서 받아 왔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남북관계 악화를 우려한 듯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라는 이유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을 꺼리고 있다. 최근 대북전단 관련 단체들에 대한 법인 허가 취소 등 여러 제재가 가해진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5년 전 인권위는 북한 인권 단체의 활동을 ‘표현의 자유’라고 했지만 지금은 중립적인 의견도 내지 않았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가 ‘활동가들을 겁박하려는 명백한 시도’라는 성명을 낸 것과 대조적인 일이다.

이러한 인권위의 행보는 민주주의의 기능을 망각한 것이다. 독재국가와 달리 민주국가는 위계적인 단일 결정체계가 있는 대신, 개인과 기관 등 복수의 행위자(agent)들이 각자 맡은 바에 따라 행동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만들어간다. 대통령이 평화를 위해 남북관계를 고민하는 한편으로, 북한 정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목소리 역시 필요하다. 인권위의 기능이자 임무는 분명 이것이었다. 그러나 그 책임은 내버려졌고, 약자의 편에 서는 대신 권력을 일원적으로 따랐던 것이다.

인권위는 설립된 배경 및 목적에도 역주행하고 있다. 인권위는 독립된 중앙행정기관으로서,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대통령 등 정치권력에 대한 종속 가능성이 지적되어 왔고, 인권을 수호하는 측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받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또 현실정치에서의 국익과 도덕적 지향이 충돌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데, 이를 적절히 역할분담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 이 같은 원려(遠慮)로 김대중 정부가 처음부터 독립시킨 기구가, 그 후신을 자처하는 현 정부 하에서 스스로 자율성을 헌납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 문제는 민간분야에까지 파급된다. 고려대 서창록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NGO들까지도 북한 인권 문제를 부차적인 관심사로 여길 뿐이고, 실제로는 국내정치적인 상황에 더 많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원칙에 기반한 인권정치(principled politics)가 필요하나, 전반적으로 원칙 자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 독재국가의 만행에 민주국가의 강점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 갖은 한계를 노정해왔다. 국제적으로는 갈팡질팡했고 국내적으로는 억압적이었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인권상황을 묵인하는 비인권적인 국가로 비춰진다면, 세계인들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보호능력을 의심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북한 주민들에게는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요컨대 통일의 원심력을 강화시키고 구심력을 약화시켜, 우리의 뚜렷한 국가목표인 남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된다.

의문의 여지없이, 북한 인권에 대한 접근방식은 지금과는 반대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북한 정권의 강압에 맞서는 민주주의 국가의 이념적 항상성과 기능적 다양성이 필요하다. 독재국가의 만행에 민주국가의 강점으로 대응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일부 권력층이 아닌 만인(萬人)에게 설득력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정치체제보다 월등하다. 북한과의 단독교섭과는 별도로 국제기구에서는 민주적 이념을 일관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남한이 북한보다 우월한 영역은 물질적 풍요 뿐 아니라 도덕적인 규준도 되어야 한다. 인권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행태와 오락가락하는 정책행보는 반복되어서 안 된다. 정부는 선진적인 가치의 추구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 대한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일관된 신호를 보내야 마땅하다. 이로써 전 세계에 대해 우리의 통일역량을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는 상충되어 보이는 국가 목표를 여러 정책적 행위자들에게 나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독재국가와 구별되는 민주국가의 고유한 강점이다. 우리는 단순히 물리적 충돌을 피하는 목표 뿐 아니라, 압제받는 이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하는 임무도 가지고 있다. 통일부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 정권과 교섭하는 한편으로, 인권위는 인권문제에 대해 천착해야 한다. 각자의 책무를 성실히 이행하여 복수의 목표에 대응하는 투 트랙(two-track) 전략이 필요하다.

● 보다 더 적극적인 평화를 향하여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평화라는 개념에 대해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인 ‘소극적 평화’와, 구조적 폭력 및 정치적 억압까지 사라진 ‘적극적 평화’로 대별했다. 갈퉁의 이론에 따라, 우리가 원하는 ‘한반도 평화’가 진정 무엇인지 자문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제는 적극적 평화를 두고 고차원적 고민을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민주적인 대한민국이 주도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라.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북한 내 시스템이 남한의 민주주의를 서서히 닮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 남한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인권에 뿌리내린 헌법정신을 철저히 고수하는 데에서부터 재출발해야 할 것이다. 독재국가에 야합하는 대신, 민주국가다운 인권정책을 펴야 한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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