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제는 핀셋 공급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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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용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김세용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이건 뭐지?”

2년 전 2030세대의 주생활 패턴을 조사했을 때 50대 간부들 입에서 나온 첫 마디다. 2030세대 1인 가구가 가장 많이 사먹는 음식은 커피였다. 그들은 커피를 1주일에 10회 이상 사서 마셨다. 당연히 집에 있는 주방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외에도 많은 응답이 50대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들이 원룸에서 가장 원하는 가구는 에어컨이었다. 선풍기가 아니었다. 소득 2000달러 시대에 자란 50대가 2만 달러 시대에 자란 2030세대를 이해하기란 버거웠다.

우리는 그들의 요구를 하나씩 이해해갔다. 원룸 한쪽 벽을 차지하는 싱크대를 과감히 줄였고, 줄인 돈으로 에어컨을 달았다. 이렇게 2030을 타깃으로 한 평면 30여 개가 개발됐고,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집, ‘청신호’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3040세대의 요구는 2030과는 또 달랐다. 30대 중반 이후, 사회에 발을 내디딘 지 10∼15년 차인 이들은 돈이 부족해도 자가를 원했다. 소득분위로 보니 그들이 들어갈 임대주택 유형도 많지 않았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입지는 처가나 친가 인근이었다. 2세 양육 문제 때문이다. 내 집은 갖고 싶고, 청약점수는 50대에게 밀리는 그들을 위해 8월 중순 ‘연리지홈’을 선보였다. 주택 가격의 4분의 1을 우선 지불하고 나머지는 20∼30년 동안 나눠 갚는 구조다.

발표 후 질문이 쏟아졌다. 오해도 많았다. 일단 10여 년 전에 나온 지분형주택과는 다르다. 지분형주택은 완납을 해야만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 반면에 연리지홈은 처음부터 소유권 일부를 갖고 지분을 늘려간다. 청약점수가 4050세대에게 밀리는 30대를 위해 공급 물량의 과반은 추첨으로 가려 한다. ‘로또 분양’을 막기 위해 일시불도 금지한다. 어렵게 모은 종잣돈으로 4분의 1 가격에 집을 사고, 이후 착실히 저축해 남은 집값을 갚게 공공이 돕는 구조다. 나무 두 그루가 함께 자라는 연리지를 브랜드로 내세운 이유다.

5060세대는 어떠한가. 노후자금이 걱정이지만 주요 자산은 낡은 집 한 채 정도다. 은퇴를 앞두고 집을 공공에 팔면, 공공은 사들인 집을 리모델링하거나 새로 지어 집을 넘긴 본인에게 임대한다. 집값은 나눠서 30년간 매달 통장에 들어온다. 이자도 받는다. 5060세대를 위한 ‘누리재’의 기본 구조다.

청신호에서 연리지홈, 누리재로 이어지는 생애주기별 공공주택 공급체계를 설계하는 데 2년 이상이 걸렸다. 아직 정교한 보완과 세밀한 타기팅도 필요하다.

최근 30대의 ‘패닉바잉(Panic Buying)’이 이슈다. 올 들어 주택을 가장 많이 구입하는 연령대가 30대인 것은 팩트다. 이를 패닉바잉으로만 넘길 일인지는 더 들여다봐야 한다. 보는 사람들이 더 두려운 ‘패닉워칭(Panic Watching)’일 수도 있다. 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못 맞춰 주는지도 세심히 살펴야 한다. 일단 공급만 대폭 늘리면 많은 게 해결될 거라는 생각은 버리자. 그들의 요구와 행태에 답이 있다. 패닉바잉은 핀셋 공급으로 잡아야 한다.
 
김세용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패닉바잉#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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