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무죄, 탐닉한 인간은 유죄[Monday DBR]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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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술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술에 취한 상태로 범죄를 저지른 후 심신미약을 내세워 ‘주취감형’을 받는 경우가 자주 벌어지면서 이를 폐지하라는 여론도 비등하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피해자가 늘어남에 따라 최근에는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알코올 중독, 주폭(酒暴) 등도 사회병리의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술에 대한 고민은 옛날에도 다를 게 없었다.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김구(金絿·1488∼1534)는 술이 윤리를 어지럽히고 인간의 성품을 잘라내 버린다고 봤다. 그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도 술을 마시면 어리석어지고, 현명한 사람이라도 술을 마시면 사리를 판단하지 못하며, 강한 사람이라도 술을 마시면 나약해진다”고 단언했다.

물론 이 말이 술을 완전히 없애버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유교에선 향음주례(鄕飮酒禮)라는 예법이 있을 정도로 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대접하며 잔치를 열 때도 술이 필요하다.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고 우의를 돈독히 하는 데 도움을 주며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좋은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술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데서 발생한다. 술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술의 부림을 받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김구는 이 문제를 정신의 수양으로 연결했다. 그는 “세상에는 생기기 쉬운 폐단과 구제하기 어려운 폐단이 있다. 생기기 쉬운 폐단은 사물의 폐단이고 구제하기 어려운 폐단은 정신의 폐단이다. 정신의 폐단이 원인이 되고 사물의 폐단은 그 결과일 따름이니, 술의 폐해 역시 어찌 정신의 폐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술의 폐단을 제어할 수 있도록 정신을 수양하라는 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개개인의 정신 수양’은 임금과 국가가 앞장서서 도와야 하는 과제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백성도 각자 수신(修身)에 힘써야 하지만 임금과 국가 또한 백성이 잘 수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 윗사람이 모범을 보이고 교화(敎化)해야 하며 백성의 수신을 방해하는 환경이 있다면 즉각 바로잡아줘야 한다. 술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위에 있는 사람이 시간을 아끼고 주의를 기울여서 교화에 힘쓰고 마음을 밝혀야 합니다”라고 김구가 말한 것처럼 말이다.

아울러, 제도나 법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김구는 술 문제를 두고 “단지 구구한 법령으로만 해결하고자 한다면 명령을 해도 간사하게 응할 것이고 처벌을 해도 거짓으로 대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금주령을 내리고 주취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언제든 법망을 피하려고 할 것이며, 결국 술로 인한 폐해를 해소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구는 술에 탐닉하게 만들고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사람들이 술에 취하려 드는지, 술을 도피처로 삼으려 드는지를 이해하고 그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병리라는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구는 술에 관한 대책을 얘기했지만 그의 접근 방식은 다른 사안들에도 적용할 수 있다. 어떤 대상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보통 대상 자체에 원인을 돌린다. 술, 도박, 미신, 게임 등이 원래부터 나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도나 규정이 잘못됐다며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것을 오·남용한 인간의 정신이다. 개인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며,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끝인가?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만 찾으면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워진다. 인간의 문제는 개인뿐 아니라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도 검토돼야 한다. 어떤 문제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엇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했고 악화시키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해소해야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김구의 답안이 전하는 교훈이다.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0년 7월 1일자에 실린 ‘술은 죄가 없다.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김준태 성균관대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akademie@skku.edu


#술#무죄#인간#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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