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만에 찾은 화랑무공훈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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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 특공대원’ 93세 김경우씨
중공군과 혈투로 왼쪽 시력 상실… 훈장 대상 됐지만 생업 바빠 잊어
軍 ‘훈장 찾아주기’ 조사 끝에 수여

24일
 광주 대성초등학교에서 열린 훈장 수여식에서 서욱 육군참모총장(왼쪽)이 6·25전쟁 참전용사인 김경우 예비역 육군 하사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한 뒤 함께 훈장증을 들어 보였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24일 광주 대성초등학교에서 열린 훈장 수여식에서 서욱 육군참모총장(왼쪽)이 6·25전쟁 참전용사인 김경우 예비역 육군 하사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한 뒤 함께 훈장증을 들어 보였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24일 오후 2시 광주 대성초등학교 강당. 서욱 육군참모총장이 김경우 예비역 육군 하사(93)의 가슴에 화랑무공훈장을 달아줬다. 김 하사의 훈장 수여식에는 가족 10명이 참석했다. 김 하사의 아들 인호 씨(65)는 “가문의 영광이다. 화랑무공훈장을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했다.

광주 출신인 김 하사는 1951년 4월 입대했다. 육군 9사단에 배치된 김 하사는 다른 부대원 30명과 함께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에서 중공군을 생포하는 특공대원으로 활약했다. 김 하사는 같은 해 5월 어느 날 오전 1시 척후병 임무를 맡아 백마고지를 오르며 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순간 뒤따라오던 다른 대원이 넘어지며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중공군은 대원들의 침투를 알아챘고 수류탄을 고지 아래로 던지기 시작했다.

김 하사는 수류탄이 터지며 생긴 철조망 파편을 왼쪽 눈에 맞아 시력을 잃었다. 다른 대원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숨졌다. 김 하사는 몸을 아래로 굴리며 가까스로 백마고지를 내려왔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1953년 전역했고 육군은 이듬해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김 하사는 전역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했다. 하지만 화랑무공훈장 수여 사실 자체를 알지는 못했다. 지난해 육군은 6·25전쟁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을 꾸렸고 같은 해 김 하사는 연락을 받았다. 김 하사는 “66년 만에 훈장을 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육군은 이날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대성초등학교에서 참전용사의 이름 등을 기재한 모교 명패를 증정하고 참전용사에겐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이 학교는 45명의 참전용사를 배출했다. 김 하사와 다른 유가족 11명은 무공훈장을 받았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화랑무공훈장#김경우#훈장 찾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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