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소설로 이제야 마음의 짐 내려놓았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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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5·18’이란…]<4·끝> 소설가 정찬주

정찬주 작가가 쓴 ‘광주 아리랑’의 주인공은 1980년 5월 고달프게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정 작가는 “소설은 항쟁에 나섰던 이들의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는 피맺힌 울분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다연 제공
정찬주 작가가 쓴 ‘광주 아리랑’의 주인공은 1980년 5월 고달프게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정 작가는 “소설은 항쟁에 나섰던 이들의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는 피맺힌 울분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다연 제공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부채의식이 있다. 평생에 걸쳐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부채의식이 있을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아픔을 글로 승화시켜 울림을 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아닐까. 정찬주 작가(67)도 그랬다. 그는 참혹하면서도 숭고했던 40년 전 5·18의 실상을 한 편의 소설로 엮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정 작가는 최근 두 권짜리 소설 ‘광주 아리랑’을 펴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에 바치는 헌정 소설이다. 5·18의 ‘전야’라 할 수 있는 14일부터 공수부대의 도청 함락으로 상황이 일단락된 27일 아침까지를 70개 장으로 나눠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화순에서 손님에게 광주 소식을 듣고서 구두 닦는 일을 접고 넘어온 박래풍, 공장에서 망치를 직접 만들어 나온 용접공 김여수, 견딜 수 없어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온 가구 노동자 김종철, 회사 일로 광주에 출장을 왔다가 공수부대원의 횡포를 보고 분개한 회사원 김준봉….

그는 이들을 통해 시민군이 폭도가 아니었음을, 그저 안식을 찾지 못한 채 고달프게 살아간 그러나 따뜻한 가슴을 가진 민초들이었다는 것을 온전히 증언하고 있다. 항쟁에 가담한 사람들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 총을 들지 못하고 양심의 소리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고통도 같은 무게로 다루고 있다.

전남대 5·18연구소가 2003년 출간한 ‘5·18항쟁 증언자료집’이 소설의 기둥이었다. 계엄군의 폭압에 맞서 광주를 지켰던 평범한 시민들의 증언을 채록한 자료집을 통해 시민군으로 참여한 이들의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면모를 충실히 부각시킬 수 있었다.

시민군 내부의 무질서와 혼란, 민중 출신 시민군과 대학생들 사이의 긴장과 불화, 공수부대를 상대로 한 항복에 가까운 협상과 죽음을 각오한 저항을 놓고 맞서는 시민 지도부 내의 갈등을 있는 그대로 그려 다큐소설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정 작가는 왜 ‘광주 5·18’을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을까.

“5·18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홍보부장을 했던 고 박효선이 죽마고우예요. 계엄군이 5월 27일 새벽 무자비하게 도청을 진압하자 친구는 광주에서 10여 일 피신해 있다가 서울로 탈출했어요. 그때 상명대사대부속여고 교사였던 나를 찾아왔고 수유리에 있던 내 자취방에서 10여 일을 피신해 있었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날마다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친구에게 참혹한 광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5·18 광주 역사를 소설로 쓰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

정 작가는 “5·18을 경험한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광주 역사를 온당하게 기록해 남겨줘야 한다는 책무 같은 것을 느꼈다”며 “소설을 읽는 이들이 1980년 5월의 광주는 특별한 도시가 아니라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보통의 도시였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정 작가는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단에 잠시 섰다가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일하면서 법정 스님 책들을 펴냈다. 이런 인연으로 스님의 각별한 재가(在家) 제자가 됐다. 20년 전 서울에서 낙향해 전남 화순군 계당산 자락에 ‘이불재(耳佛齋)’를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암자로 가는 길’ 등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일깨우는 책 수십 권을 펴내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정 작가는 “이제야 5·18이란 글 감옥에서 해방된 느낌”이라며 “‘광주 아리랑’을 영문 번역본으로 발간해 광주가 얼마나 위대한 도시였는지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광주 아리랑#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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