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고용보험이 복지국가 핵심… 21대 국회 1호법안 돼야”[파워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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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8일 서울시청 6층 집무실에서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로 ‘K방역’ 모델을 만들었다면 ‘K고용’으로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모든 계층을 끌어안자”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8일 서울시청 6층 집무실에서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로 ‘K방역’ 모델을 만들었다면 ‘K고용’으로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모든 계층을 끌어안자”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올 1월 20일 이후 11일로 113일째다. 수도 서울의 방역과 피해 대책 등을 지휘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8일 서울시청의 6층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날보다 2일 전 이태원 클럽 방문자 가운데 처음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코로나19 방역 전선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2011년 10월부터 8년 7개월 동안 서울시정을 맡고 있는 박 시장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는 이 정도 되면 끝나는 분위기였는데, 코로나19는 언제 어디에서 집단 감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이게 코로나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감염증 확산이 한순간이듯 차단 또한 신속해야 한다. 서울이 뚫리면 대한민국이 뚫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감염 최소화와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 시장은 “지금이야말로 전(全) 국민 고용보험 도입이 필요한 때”라며 “21대 국회의 1호 법안이 되도록 (가까운) 국회의원들과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메르스 때와 비교하면 이번 대처는 어땠나.

“메르스의 교훈이 우리에게 하나의 교과서가 됐다.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과 투명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당시 제가 ‘과잉대응이 늑장대응보다 낫다’, ‘투명성은 감염병의 특효약이다’ 같은 말을 했다. 이러한 원칙이 이번에는 현장에서 제대로 관철됐다고 본다.”

―그 이후 개정된 관련법의 도움을 받았나.

“일부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큰 철학과 원칙이 바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가 좀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첫 환자부터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긴장해서 초기부터 대응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크게 세 가지라고 보는데 첫째는 선별진료소를 만들어 누구나 검사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둘째는 확진자가 발생하면 주변 접촉자를 확인해 자가 격리한 것이다. 마지막은 이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시민들이 조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선 그게 어떻게 가능했나.

“밑바탕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있다.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미국은 검사 한 번에 460여만 원을 내야 하기 때문에 검사를 함부로 못 한다는데 우리는 국민건강보험 덕분에 무료다. ‘K방역’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에는 선진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코로나19 피해 최소화를 위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책도 잇따랐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정부보다 서울시가 먼저 준비했다. 소상공인의 고용 유지를 위해 70만 원씩 두 달간 지급하는 자영업자 생존자금은 전국적으로 서울 외엔 하는 곳이 없다. 특수고용직이나 배달대행 등 ‘플랫폼 노동자’ 지원도 서울시가 먼저 내놨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대책은 대출, 금리 인하 등 간접적 지원책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서울시의 자영업자 생존 자금은 기존 정책과 달라 보였다.

“항공사나 여행사처럼 피해가 큰 대기업은 정부가 신용을 공급해줘야 한다. 건실한 회사들이 위기여서 부도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는 중앙정부가 일일이 도움을 주기 어렵다. 융자는 생명 연장에 불과하다. 그사이 고용 유지는 못 한다. 이들에게 고용 유지를 위해 70만 원씩 두 달 치를 지급하는 것은 지속적으로는 아니어도 생명 연장에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소외된 프리랜서나 특수고용노동자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등에서 나오고 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특별히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나라에 ‘나쁜 일자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등은 고용보험도 안된다. 4대 보험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와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당장 실현하기는 어렵다’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커다란 역사적 위기 속에서 기회와 변화의 에너지가 생긴다고 본다. 영국도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최초의 전 생애를 포괄하는 복지 시스템이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복지 수준이 가장 열악한 수준인 우리나라도 이번에 복지국가를 완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핵심이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이다. 국민건강보험으로 K방역 모델을 만들었듯 사각지대에 있는 모든 계층을 끌어안는 ‘K고용’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재원 마련, 절차 등 난관이 많을 텐데….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우선 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징수 기준을 임금에서 소득 중심으로 바꾸면 가능하다. 징수 주체도 근로복지공단에서 국세청으로 바꾸면 된다. 이 세 가지만 실행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

“저는 21대 국회가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1호 법안으로 추진했으면 한다. 이번에 들어간 저와 친한 의원들과 세미나도 하면서 밀어달라고 얘기해 보려 한다. 이번 총선의 민의는 ‘내 삶을 바꾸는 새로운 정치를 해 달라’는 요청이라고 생각한다. 광범위한 노동계층이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점점 더 차별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은 새로운 국회와 정부의 중차대한 임무라고 본다.”

―21대 국회에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의원이 많다.

“계라는 말은 구시대적 발상이고, 저와 서울시에서 비전을 가다듬었거나 그동안 삶의 궤적을 통해 함께한 의원이 많이 있다. ‘표준국가’를 향한 대전환의 길을 함께할 수 있는 분이 상당히 있는 것 같다.”

―지난달 27일 한 콘퍼런스에서 “민주화, 산업화를 넘어 표준국가의 시대로 가자”고 말했다. 표준국가론에 대해 설명해 달라.

“몇 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의 사회는 어떠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다. 표준국가는 우리가 표준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자는 의미다. 우리는 늘 영국, 미국 등 서양을 따라가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세상을 보자. 뉴욕에서는 코로나19로 하루에 수백 명이 사망하는데 서울의 치사율은 (사망자 2명으로) 거의 제로에 가깝다. 중국은 도시를 봉쇄했고, 영국은 런던 지하철이 멈췄다. 하지만 우리는 개방적 체제와 민주주의 시스템, 시민들의 인식, 의료진의 실력이 아주 우수하다.”

―K방역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가 표준이라고 말하기는 이르지 않나.

“어떻게 마음을 먹고, 결심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이 최근 ‘서양 우월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글을 썼다.(본보 4월 11일자 A30면 참조) 값싸고 깨끗한 지하철, 와이파이 수준, 영화 ‘기생충’이나 방탄소년단(BTS)까지…. 이게 하루아침에 생긴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이제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방향을 인도하는 선진국이 돼야 한다.”

―올 10월이면 시장 취임 만 9년이 된다. 서울시는 바뀌었는가.

“과거 서울은 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주로 하드웨어에 투자해왔다. 이제는 우리 시대의 담론이 토목이나 거대 하드웨어보다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는 것에 있다고 본다. 빅데이터를 보면 소확행, 행복, 힐링, 치유 같은 단어들을 시민들이 많이 사용한다. 물론 제게도 개발주의 요구가 계속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8년간 시민 삶의 질을 바꾸는 게 서울시정의 중심이었다. 복지 예산은 취임 전의 3배 이상 늘었고, 나무 3000만 그루를 심는 게 목표였는데 이미 2500만 그루를 심었다. 지속가능한 미래도시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했다. 시내를 걸어보면 안다. 다만 제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한 가지가 미세먼지다. 수천억 원씩 투자를 해도 아직까지 해결이 잘 안된다.”

―코로나19로 지역경제가 어렵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지방 없이 서울이 있을 수 없고 농촌 없는 도시가 있을 수 없다. 균형 발전이 대한민국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가처분소득을 늘릴 필요가 있다. 그 소득으로 소비를 늘려야 내수시장이 돌아가고 중소기업, 지방경제 등이 살아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 못지않게 지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의 귀환, 정치의 소환, 지방자치단체의 발견’이라는 세 가지를 다시 보게 됐다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게 지자체는 주민들과 가까이 있고 현장에 있다. 무엇이 일어나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문제가 무엇인지 간파하고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전 세계가 자치와 분권을 추진한다. 자치와 분권이 잘된 나라일수록 국가경쟁력이 높고 국민이 행복하다. 우리는 아직도 근본적으로 자치와 분권 실현이 잘 안되고 있다. 이것도 새 국회의 큰 과제 중 하나가 되리라고 본다.”

박 시장의 임기는 2022년 6월까지다. 다음 대선은 같은 해 3월에 치러진다. ‘만 10년인 내년 10월에도 시장 자리를 지킬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 위기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서울시정을 이렇게 열을 토하면서 얘기했는데”라며 웃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 경남 창녕 출생(64세)
△ 경기고, 단국대 사학과 졸업
△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검사, 변호사
△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2011년 10월∼현재 서울시장

인터뷰=정원수 사회부장
정리=박창규 kyu@donga.com·홍석호 기자
#박원순#서울시장#코로나#k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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