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쇄신, ‘뉴딜 동맹’ 파고 넘을 수 있는가[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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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적 대응과 어설픈 左클릭, 모두 한계
상대편 의제를 넘나드는 상상력 발휘해야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지난해 11월 당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청년들과 대화하는 ‘청년정책 비전발표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의 쓴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평일 오후 2시’라는 행사 시간도 문제가 됐다. 한 참석자는 “평일 오후 2시는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는 청년들은 오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당초 청년들의 각자 일이 끝나는 평일 저녁에 하려 했지만 황 대표 일정에 맞춰 행사 시간이 바뀌었다는 후문이다. 2030세대와 교감하겠다는 행사 취지를 무색하게 한 ‘꼰대 정치’의 전형이었다.

보수 야당의 4·15총선 참패 배경을 짚어보면서 떠올린 한 장면이었다. 수차례 요동치는 선거 흐름을 단편적 사건만으로 재단할 순 없지만 ‘제로’에 가까운 정치적 감수성 수준을 보여준 것이다. 정치적 소통의 ABC는 국민의 뜻, 민심을 먼저 읽는 것일 텐데 청년들의 처지, 생각은 나 몰라라 하고 보여주기 쇼만 생각했으니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총선 참패 후 미래통합당에선 연일 쇄신과 혁신의 구호는 난무하지만 변화의 출발점은 민심의 저류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보수우파 진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 이런 인식이 확고하지 못해 진보좌파 정책을 따라하는 ‘좌(左)클릭’의 우를 범한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교조적으로 목소리만 높이고, 무조건 “우리 것이 아니다”라며 주요 현안에 선 긋기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1996년 재선 캠페인을 이끈 딕 모리스는 “선거에서 전통적으로 상대 정당, 진영의 텃밭이라고 여겨진 이슈나 의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 클린턴 캠프는 공화당 이슈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들의 해결책은 거부했다. 그 대신 민주당식 해결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공화당 바람 빼기에 성공했다.

공화당이 사형제도와 같은 강력한 범죄 대처 방안을 내놓자 클린턴은 총기 규제, 경찰 증원과 같은 해결책으로 대응했다. 공화당이 전면적인 감세안을 추진하자 클린턴은 이 감세안을 수용했다. 그 대신 대상을 대학생, 어린아이들 부모, 저소득 노동자 계층으로 한정해 민주당 노선을 지켰다. 상대당의 의제를 무력화하면서 지지층을 붙잡고 가는 방식이다.

이처럼 서로 충돌하는 듯한 이슈를 혼합할 수 있는 정책적 능력이 승부를 가를 수 있다. 정당의 가치는 정당을 존립하게 하는 ‘소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소금만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국민은 일상에서 그 소금이 들어간 다양한 음식을 먹고, 음식 맛을 평가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런 디테일을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아 ‘한국형 뉴딜’을 선언했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복지 대책을 넘어 정치적 지평 확대까지 염두에 둔 듯하다. 미국 대공황기에 민주당 루스벨트 정부가 ‘뉴딜’이라는 대규모 국책사업과 복지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했고, 이 성장 전략이 30년 넘는 민주당 장기 집권의 밑거름이 됐다. 정부여당은 ‘디지털 뉴딜’을 강조하고 있지만 좌파 진영이 토건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우(右)클릭’이라는 비판도 감수하겠다는 분위기다. 보수·중도 지지층까지 끌어들이려는 30년 장기 집권 플랜으로 비칠 만하다.

상대 당이 선점한 의제의 벽을 넘나드는 과감한 변화는 가치 포기가 아니라 외연 확대다. 이를 위한 정치적 상상력이 쇄신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통합당이 쇄신 방향을 놓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여권발 ‘뉴딜 동맹’의 파고는 거세게 밀어닥칠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미래통합당#총선 참패#보수 쇄신#뉴딜 동맹#보수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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