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무너뜨리면 브렉시트 좌절”… 메이, 강경파와 정면승부 선언

25일 협상안 서명 앞두고 시계제로
“합의 초안, 패배 치부 가리는 나뭇잎”
브렉시트 강경파 총리 불신임 추진… 투표 성사 정족수 48명 넘길지 주목

“나를 무너뜨리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자체가 좌절될 수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8일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번 주가 영국 미래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총리 불신임을 추진 중인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와의 정면 승부를 선언했다.

지난주 EU와 브렉시트 실무협상을 마무리 짓고 초안을 발표한 메이 총리는 25일 EU 27개 회원국 정상들과 만나 협상안에 서명하고 정치적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 전에 총리 불신임 투표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번 주 메이 총리와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 간의 한판 승부가 예고돼 있다.

보수당 내 강경파인 제이컵 리스모그 하원의원은 “메이 총리가 당의 신념을 배신했다”며 불신임안 가결을 촉구했다. 그는 “보수당은 인재들로 가득 차 있다”면서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 데이비드 데이비스 전 브렉시트 장관 등 메이 총리와 각을 세우고 떠난 이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강경파 사이에선 EU 정상회의 서명 전에 총리 불신임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존슨 전 장관은 19일자 언론 기고문에서 “메이 총리가 합의한 585페이지 초안은 패배의 치부를 가리는 무화과 나뭇잎과 같다”고 비판하며 재협상을 요구했다.

총리 불신임 투표가 이뤄지려면 보수당 의원 48명 이상이 서명해야 한다. 영국 언론은 현재까지 42명의 의원이 보수당 1922위원회 그레이엄 브레이디 의장에게 불신임 요청 서한을 보냈다고 전했다. 브레이디 의장은 “서명자가 48명 이상이 되면 불신임 투표 진행은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불신임 투표가 진행돼도 보수당 의원 과반인 159명 이상을 확보해야만 메이 총리를 끌어내릴 수 있어 강경파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메이 총리가 신임될 경우 강경파는 향후 1년 내 불신임 투표를 제기할 수 없다.

메이 총리가 불신임될 경우 새 총리를 뽑는 보수당 전당대회가 열리게 된다. 강경파 총리가 영국에 유리한 협상안을 EU에 다시 제시하겠지만 EU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이 경우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보수당 내에선 총리 불신임 투표가 자칫 조기 총선으로 이어져 보수당이 정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메이 총리가 18일 “불신임 투표 서한을 보낸 의원이 정족수 48명에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나를 무너뜨리면 오히려 브렉시트가 지연되거나 좌절될 수 있다”고 말한 것에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메이 총리가 1차 관문인 불신임 투표 시도에서 살아남아 브렉시트안에 정식 서명하더라도 2차 관문이 남아 있다. 다음 달로 예고된 하원의 비준 투표다. 하원 통과를 위해서는 투표 참여 의원의 과반인 320표를 확보해야 한다. 보수당과 연정 파트너인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 의원을 합치면 326표다.

그러나 “사실상 EU와 관세 동맹이 유지돼 브렉시트 국민투표 정신에 반한다”고 주장하는 보수당 내 강경파, “아예 더 확실하게 관세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등 야당,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를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DUP 의원들이 모두 협상안에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어 통과를 낙관하기 힘들다.

의회에서 협상안이 부결될 경우 제1야당인 노동당은 정부 불신임 투표를 제안하게 된다. 정부 불신임 투표가 가결되면 메이 총리는 사임하고 조기 총선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 불신임 투표가 부결될 경우에는 브렉시트 2차 국민투표, 혹은 협상 타결 없이 브렉시트를 맞는 ‘노딜’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 어떤 시나리오든 당분간 영국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