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온 헬기 추락, 정비 과실 집중 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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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중립적 조사위 구성을”… 장례 거부
일각 “기어박스 등 기체결함 의심”


경북 포항에서 시험비행 중 추락한 해병대 상륙기동헬기(MUH-1·마린온)의 사고 원인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깊어지고 있다. 이륙 후 4초 만에 헬기의 메인로터(주 회전날개)가 통째로 분리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자동차가 주행 중 바퀴가 빠져버리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군 사고 조사위원회는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에 비춰 정비 과실 가능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고 군 소식통은 19일 전했다. 해병대는 올 1월에 사고기를 인수한 뒤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정비를 맡겼다. 사고 당일에도 KAI 기술진이 이륙 직전에 메인로터 등 헬기 주요 장비의 이상 여부와 진동 정도를 점검했다고 한다.

군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부품의 탈·장착 등 정비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거나 손상된 부품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을 소지가 있다”고 했다. 메인로터 등의 주요 장비(진동 저감장치, 로터 방향 및 각도 조정장치 등)의 부품 교환이나 탈·장착 과정에서 이격이 생겼거나 고정을 소홀히 해 비행 중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사고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기체 결함 가능성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다. 헬기 조종사 출신의 군 관계자는 “사고 영상을 보면 엔진 동력을 메인로터에 전달하는 기어박스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어박스 내부는 축 기어를 둘러싸고 8개의 보조기어가 동그란 형태로 배치돼 있다. 모든 기어가 맞물려 고속(분당 수백 회)으로 돌아가면서 메인로터를 회전시키는 극히 복잡한 구조다. 현역 헬기 조종사인 A 소령은 “일부 기어가 파손되면 이와 연결된 다른 기어들도 ‘연쇄 폭발’처럼 순식간에 부서져 메인로터가 분리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슈퍼퓨마 헬기의 추락 사고도 기어박스의 보조기어 1개에서 발생한 미세 균열이 원인이었다. 엔진(미국)과 기어박스(유럽), 메인로터(한국) 등 다국적 핵심 부품으로 제작된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마린온의 원형)이 구조적으로 결함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희생당한 분들과 그 유족에게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심승섭 신임 해군참모총장 진급·보직 신고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며 심 총장에게 “그분들의 희생에 걸맞은 합당한 예우와 보상이 이뤄지도록 잘 챙겨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하루빨리 사고 원인을 제대로 규명해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마련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군 사고 조사위는 해외 유사 사고 사례와 사고기 잔해 분석 등을 통해 정확한 사고 경위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당초 조사위엔 KAI와 마린온을 시험 평가한 국방기술품질원 관계자들도 포함될 예정이었지만 유족들의 반발로 배제됐다. 유족들은 국회가 추천하는 중립적 인사로 사고 조사위 구성, 사고 현장 공개, 사고 경위 및 책임 소재의 명확한 규명 등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영결식 등 장례 절차를 거부하겠다고 군에 밝혔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손효주 기자·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기어박스#기체결함 의심#마린온 헬기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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