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원하는 구조의 집을 찾다 보니 내부가 칙칙하게 변한 낡은 아파트를 얻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주말이면 짬을 내 싱크대와 가구에 페인트를 칠하고, 재료를 구입해 와서 가구나 간단한 전기 기기를 만들기도 한다.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손으로 뭔가 만드는 일을 좋아하니 취미 삼아 즐겁게 하고 있다.
비단 기자뿐 아니라 최근 가구 등 여러 가지 물건을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드는 DIY, 집 안을 편리하고 예쁘게 고치는 ‘셀프 인테리어’ 등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각종 전자 기능이 포함된 복잡한 물건을 척척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메이커’ 활동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정부에서도 앞다퉈 지원 사업을 늘리고 있다. 16일 중소벤처기업부는 메이커들의 창작활동 지원을 위한 ‘메이커스페이스(메이커스) 구축 사업’ 일환으로 전남지역 6개소를 새로 지정하는 등 관련 사업소를 65개로 늘렸다고 밝혔다. 대학이나 기업, 정부 연구기관 등의 실험시설을 활용해 메이커들을 지원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하 과학창의재단)도 비슷한 사업을 운영 중이다. 전국 과학관과 주민센터 등에 ‘무한상상실’이라는 공간을 마련해 메이커들을 돕고 있다. 두 사업은 닮은 점이 많지만 기본 목적에서는 차이가 있는데, 메이커스는 시민들의 창업 마인드 고취가 기본인 데 비해 무한상상실은 과학교육 성격이 강하다.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전문가들의 도움이다. 메이커스나 무한상상실을 찾아가 보면 현장 전문가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막상 체계적인 교육이 시행된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다. 기술 전문가가 반드시 좋은 ‘선생님’이라고 보긴 어려운 까닭이다.
메이커 활동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여지가 크다. 국민들의 과학과 공학 소양이 높아지길 기대할 수 있고, 다양한 경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엔 메이커에게 필요한 공구나 재료를 판매하는 등 관련 사업을 벌이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런 효과가 모이면 국가적 경제 효과를 낳기도 한다. 스위스 시계 산업의 태동도 그 이면을 보면 메이커들이 적잖은 역할을 했다. 겨울이면 쏟아져 내리는 눈 때문에 집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던 사람들 사이에선 작은 부품을 깎아 시계를 만드는 취미가 생겨났고, 이런 국민적 역량이 모이다 보니 마침내 ‘시계는 스위스’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현 시대에 이런 효과를 기대하려면 공학 지식과 교육 역량,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메이커를 위한 선생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생들은 조립식 키트 등을 통해 흥미를 키워주고, 성인 메이커들에겐 수준 높은 맞춤형 교육을 시행하는 등의 단계별 교육 프로그램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태동하고 있는 국내 메이커 문화를 탄탄히 다지는 일은 지금 이 시기에 얼마나 효과적인 전략을 펴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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