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 남긴 인천고 동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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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고 총동창회 ‘인물사’ 출간… 한상억 시인 등 137명 활동상 정리
통일 이후에도 유용한 책으로 활용

‘일경(日警)의 혹독한 고문 여독으로 11명이 원통하게 호국의 넋이 되었다.’

인천 남구 인천고 운동장 한쪽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숨진 동문을 기리는 추모비가 서 있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사한 동문 한상억 시인(1915∼1992)이 비문을 썼다. 추모비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는 잘 드러나지 않은 인천고 동문 비밀결사를 위한 것이다.

1941년 3월 졸업(전신 인천상업학교 27회)한 47명은 재학중 창씨개명과 학병 반대를 위한 비밀결사를 결성했다. 4명으로 시작한 모임 오륜조(五倫組)는 다른 조선인 학생을 규합하고 학년별, 고향별 친목회로 조직을 확대하며 일본 군국주의에 저항했다.

졸업 후 대학과 직장을 다니면서도 저항운동을 벌이다 경찰에 발각돼 24명이 체포됐다. 인천경찰서 영등포경찰서로 나뉘어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대전형무소 등에 분산 수감됐다. 1945년 정태운 가재연 김려수 고윤희 동문은 후유증으로 옥사했다. 옥고를 치르고 살아남은 10명이 1980년 성금을 모아 만든 추모비를 모교에 기증했다.

이처럼 한국 근현대사에 걸출한 족적을 남긴 동문 137명의 활동상을 인천고 총동창회가 정리해 펴낸 책 ‘인천고 인물사’가 나왔다. 모교 동문의 인물사를 책으로 만든 사례는 전국 고교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소설가 이원규 씨, 조우성 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을 비롯한 동문 8명이 편집위원으로 1년 넘게 발간 작업을 했다. 총동창회는 26일 동문 약 200명과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가족들을 초청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인천고 인물사’에 등장하는 동문들의 면면은 다채롭다.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의 동생인 의친왕(이강·고종의 다섯째 아들)을 1919년 10월 중국으로 망명시키려던 의열단 행동대원이던 이을규, 정규 형제가 등장한다. 이을규는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여행증명서를 받아내 의친왕을 상하이까지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형제는 이후 독립운동의 거목 이회영 선생(1867∼1932)의 영향을 받아 무정부주의 활동을 벌였다. 일제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고종과 순종 황제의 초상을 그린 ‘어용화사(御容畵師)’ 김은호, ‘한국 경제학의 큰별’ 신태환 전 서울대 총장, 한국 프로복싱 산파역 박순철, 노동법 권위자 금동신 전 단국대 부총장, 창경원 동물부장을 지낸 ‘동물박사’ 김정만,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비서실장을 지내며 ‘삼성그룹의 입’ 역할을 한 이희준, 가수 박상규 등의 내력이 정리돼 있다.

좌익계나 친일파도 나온다. 한국 공산주의운동 거물로 북한 사법상을 지낸 이승엽, 1946년 조선공산당 ‘조선정판사 위폐사건’의 중심인물 송언필, 제주도4·3사건에서 처형된 이두옥 등이다. 일제강점기 6·10만세운동을 주도했지만 나중에 변절한 차재정, 인천에서 정미소를 하던 김태훈 등은 친일파다.

이원규 소설가는 “동아일보사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기초 자료로 삼아 당대의 신문, 잡지 등 1차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고, 유족 인터뷰도 병행해 철저하게 고증했다”며 “사실에 바탕을 두고 남북통일 이후에도 좌우 이념과 상관없이 살아남는 책이 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인천고는 1895년 중구 신포동에서 인천 최초 공립 중등교육기관인 한성외국어학교 인천지교로 출발했다. 이후 관립실업학교, 인천상업학교를 거쳐 1951년 인천고로 교명을 바꿨다. 졸업생은 약 3만 명을 헤아린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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