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살배기 선물 사주겠다는 지인, 그날 이후…49년 만에 만난 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2일 21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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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춘이던 어머니 머리카락에는 서리가 내려앉았다. 네 살배기 장난꾸러기 아들 얼굴에는 주름이 깊었다. 49년 세월의 흔적이었다.

어머니 한기숙 씨(77)는 아들 A 씨(54)를 보자 “아” 하고 탄식했다. 그러고는 “내 아들 맞네…”라고 말했다. A 씨는 낳아 준 어머니가 어색한 듯 보였다. 그는 “옆집에 할머니가 살고 있었고, 산비탈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는데 맞느냐”고 물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자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A 씨는 1969년 9월 22일 추석을 며칠 앞두고 실종됐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박모 씨(당시 20세·여)가 한 씨에게 “A를 데리고 가서 선물을 사주겠다”고 했다. 한 씨는 흔쾌히 “알았다”고 답했다. 그 대답이 그 오랜 시간 자신의 가슴에 회한을 남길지 그때는 몰랐다. 베이지색 점퍼에 고무신을 신고 장남은 사라졌다.

가족은 백방으로 아들을 찾아 나섰다. 대통령선거 전단지 한쪽에 아들을 찾는다는 전단지도 붙였다. TV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소식은 없었다. A 씨는 10세 무렵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박 씨가 그를 입양 보낸 것이었다. A 씨는 ‘부모가 나를 버렸다’는 생각에 친부모를 원망하며 커갔다.

모자의 연은 A 씨가 지난해 가을 마음을 바꾸며 다시 이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친부모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DNA 검사 등을 통해 A 씨 어머니가 한 씨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22일 이들은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만났다. 82세인 친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올 수조차 없었다. A 씨는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오해를 풀었다. 그는 “앞으로 친부모님을 종종 찾아뵙고 살겠다”고 말했다.

황성호기자 hsh0330@donga.com
안보겸기자 ab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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