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강정훈]취임 100일 한경호 권한대행의 과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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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만기친람(萬機親覽). 24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54) 얘기다.

8월 중순 부임 직후 간부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은 “업무는 실·국장 중심으로 한다. 엄격하게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사사건건 간섭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혼쭐을 낸다. “역할 똑바로 하라”거나 더 심한 질책을 들은 간부도 여럿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판단하길 꺼린다. 사소한 사안도 ‘위’로 올려 보낸다. 자율성 실종에 활력 제로(0)다. 피로감이 쌓인다.

일정과 행보도 문제다. 하루 서너 개 행사 참석은 예사다. 사진도 열심히 찍는다. 명목은 소통과 협치다. 22일 오전에는 실·국장 회의를 진주 서부청사에서 소집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대책 때문이라고는 하나 창원에서 먼 거리를 오간 간부들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푸념이 나온다. 홍보자료와 영상도 과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출마를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경북 포항에 규모 5.4의 지진이 닥친 15일 그의 일정을 보자. 오전 8시 10분 농업기술원 전시회 및 종자품평회, 8시 반 항노화 산업 보고회, 10시 반 안전문화운동추진협의회, 11시 반 이북도민 고향의 날 행사(마산), 오후 1시 반 일자리 안정자금 사업 영상회의, 2시 50분 한국은행 세미나, 5시 생활공감모니터단 워크숍(산청)….

물론 답은 현장에 있다. 하지만 상당 부분 주마간산(走馬看山)식이라는 혹평이 나온다. 주말과 휴일 ‘나 홀로 방문’도 전시성으로 비칠 수 있다. 그는 “쉬는 직원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도정(道政) 책임자를 무시하고 ‘열중쉬어’할 담당자가 몇이나 될까.

충분한 검토 없이 툭툭 던지는 의견이나 업무지시엔 ‘즉흥적’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해당 부서로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노릇. 일은 쌓여만 간다. 결재나 일정이 뒤로 밀린다는 불만도 많다. 한 간부는 “시간 맞추는 것을 잘 보지 못했다. 앞뒤가 엉키고 완급 조절이 어설프다”고 말했다.

권한대행은 성실한 관리자다. 행정안전부 지침도 그렇다. 도지사, 서부부지사마저 공석이어서 1인 3역인 그의 업무는 차고 넘친다. 물론 녹록지 않은 여건에서도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남긴 폐단을 정리하고 막힌 부분을 뚫어 박수를 받았다. 그는 “도민만 생각한다. 순수성이 의심받을 때는 답답하다”고 하소연한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노장(老將)은 병담(兵談)하지 않고 양고(良賈)는 심장(深藏)한다고 했다. 기술고시 출신인 그의 공직 경력은 32년. 지방과 중앙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 그걸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고도 노련한 장수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성찰과 새로운 다짐이 필요한 시간. 말을 줄이고 경청(傾聽)하려는 노력이 그 첫걸음이다.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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