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2부 투어 시절이었다. 오래된 중고 쏘나타 승용차에 짐을 가득 싣고 어머니와 지방 오지에서 열리던 대회를 다녔다. 고교 시절부터 괴롭히던 드라이버 입스(불안 상태)는 좀처럼 사라질 줄 몰랐다. 한 라운드에 OB를 10개 낸 적도 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나날. 당시 갓 스무 살을 넘긴 박성현(24)은 왼쪽 손목에 ‘Lucete’라는 작은 문신을 새겼다. 라틴어로 ‘밝게 빛나라’는 의미. 자신의 이름 마지막 글자인 ‘밝을 현(炫)’과도 닿아 있었다.
혹시 누가 볼까봐 아무리 더워도 반팔 티셔츠 안에 팔 토시를 받쳐 입으면서도 언제가 밝게 빛날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박성현이 꿈을 이뤘다.
박성현은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GC(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 투어 챔피언십에서 박세리(40), 박인비(29) 같은 대선배들도 밟지 못한 새로운 길을 걸었다. 최종 합계 12언더파로 우승자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에게 3타 뒤진 공동 6위로 대회를 마친 그는 일찌감치 확정지은 신인상에 이어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유소연과 공동 수상)까지 차지했다. LPGA투어에서 신인이 3관왕이 된 것은 1978년 전설의 골퍼 낸시 로페즈(미국) 이후 39년 만이다. 한국 선수 최초다. 이번 대회를 7위로 끝냈다면 못 받았을 올해의 선수였다.
캐디백에 별명인 ‘남달라’라는 문구를 새겨 넣으며 남과 달라지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했던 그는 폭발적인 장타에 쇼트게임과 퍼트 능력까지 겸비한 끝에 LPGA투어 데뷔 시즌을 자신의 무대로 엮어냈다.
축구 선수 출신 아버지와 태권도 공인 3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성현은 현일고 1학년 때인 2009년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드라이버 난조로 2010 광저우 아시아경기 출전에 실패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지역 골프장 후원을 받고, 후배 아버지에게 무료 레슨을 받기도 했다. 훈련 외에 다른 비상구는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공을 쳤던 그는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7승을 거두며 역대 최고인 시즌 상금 13억 원을 돌파했다. 남다른 근성이 없었다면 이루기 힘든 성과였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컸지만 더 큰 세상에 도전하겠다며 LPGA투어에 뛰어들었다. 힘들어도 남을 먼저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 박성현은 최근 3년 연속 1억 원을 기부했다. 미국 진출에 앞서 현일고를 찾아 1000만 원의 장학금도 내놓았다. “주위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어요.” 마음 씀씀이도 남달랐다.
국내에선 인연이 없던 신인상과 올해의 선수를 LPGA투어에서 품에 안았다. 2014년 396위에 불과했던 세계 랭킹은 이번 시즌 막판 1위까지 치솟았다. 신인 최초 1위였다. 유명 스윙코치 게리 길크라이스트는 “박성현은 타이거 우즈처럼 매 대회 이기기 위해 나오는 선수”라고 극찬했다.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 보이는 그에게 올해 점수를 물었다. “100점 만점에 80점입니다. 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어요. 아직 멀었어요. 근데 우선은 푹 쉬면서 여행 다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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